복사꽃 징검다리 - 박경희
복사꽃 징검다리 - 박경희 흔들바람에 안테나 돌아갔어도 지붕 위로 올라갈 늙은 사내 없는 집 지나는 우체부 불러 세워, 안테나 수도 계량기 보게 하는 일 눈 침침해져가는 할매 그 참에 전기선도 놓치는 일 없다 다닥다닥 붙은 시금치 캐 차곡차곡 봉다리에 넣고 가져다가 안사람 주라며 복사꽃 눈으로 본다 발 디디는 곳마다 징검다리, 돌절구 위 녹슨 솥뚜껑 그림자 말라간다 아이들 소리 저문 지 여러 해, 감나무와 늙어가는 그늘만 구시렁거린다 그래도 필 건 피고 질 건 진다고 한 번 호미질에 뻐꾸기 울고 한 번 쟁기질에 복사꽃 진다 철 따라 농사져 겨우내 병원비로, 유모차 끌고 신작로 가다가 차에 치여 제소리 못 하고 황천길 간 앞집 성님 생각에 염소 고삐 잡아채며 메에, 운다 까막까막 졸린 눈 비비며 들창 너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