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모퉁이 길을 걸어가다 - 나석중

마루안 2018. 4. 27. 22:01



모퉁이 길을 걸어가다 - 나석중



혼자서
걸어가는 발걸음이 휘청거렸다
오늘도 모퉁이 길 쓸쓸히 돌면서
휘파람 불고 오는 당신 만날 것 믿었다
내 생애를 쇠기둥 같이 받쳐온
당신이 없었다면 나는
마음조차 폭삭 늙었으리라
세상 모든 길이
지평선 훤히 보이는 가로줄뿐이라면
그 행로 얼마나 지루하고 싱거웠으랴
뒤돌아보고 또 뒤돌아보면
저만치 두 줄기 흐린 시선
내일도 두근두근 찾아갈 것이다. 내일은
틀림없이 어둠이 환하게 열리면서
불쑥 얼굴 내미는 당신 만날 것을
굳게굳게 또 믿어보는 것이다



*시집, 물의 혀, 문학의전당








반역(反逆)처럼 - 나석중



칼에 베인 손의 상처를 덧나게 하며
그 애인 몫의 상처와 열애하던 어떤 여류도 있었지만
어느 날인가 내 손등에 나타난
붓 도장 같던 상처 아닌 둥근 병증이 사라졌다
인사도 없이 왔다가 또 간다는 인사도 없이 사라졌다
아프지는 않아 약도 바르지 않고 근질거리던 病巢(병소)를
혀로 열심히 핥아 주면
감쪽같이 없어졌다가 다시 꽃잎처럼 되 피어나던 것
이게 무슨 전조인지 모르지만 수시로 바라보며
걱정 반 안심 반으로 심심찮게
거의 1 년 동안 긁어 부스럼 만들며 놀고 싶던 그 자리
희미한 검버섯 하나 달랑 反逆처럼 남겨놓고 사라졌다
내 어설픈 사랑이 어느 날 문득
나를 고단하게 놔두고 영 떠나듯이





# 나석중 시인은 1938년 전북 김제 출생으로 2005년 시집 <숨소리>를 상재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숨소리>, <촉감>, <물의 혀>, <풀꽃독경>, <외로움에게 미안하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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