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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사랑할 수 있어 참 좋았다 - 곽재구

설 연휴가 끝나고 여행 배낭에서 꺼낸 이 책의 귀퉁이가 약간 닳았다. 시집 하나와 함께 이 책은 연휴 여행길에 동행을 했다. 최대한 짐을 줄여야 하는 배낭에 들어가기에는 다소 두꺼운 책이지만 나도 모르게 손길이 갔고 꽉 찬 배낭 귀퉁이에 밀어 넣었다. 이 책은 新 포구 기행이라는 부제가 달렸듯이 곽재구의 포구 기행은 오래전에 나온 적이 있다. 한 15년쯤 됐나? 그때 읽었던 포구 기행은 낯선 포구의 쓸쓸한 풍경이 아름다운 문장과 함께 긴 여운이 남았다. 마치 저자와 함께 여행하는 것처럼,,,, 한편 이 시인은 시보다 잡문으로 너무 독자를 울궈먹는다는 생각도 했다. 이번 책은 쓸쓸함보다는 씁쓸함이 앞섰다. 많이 변해버린 풍경 탓이 가장 크지만 문장도 에전처럼 쓸쓸하지가 않았다. 어쩌면 요즘의 책 읽는 세태..

네줄 冊 2019.02.08

산은 산, 물은 물 - 손월언

산은 산, 물은 물 - 손월언 죽는 것보다는 그래도 살아 있는 것이 더 낫다. 라는 이 말은 소태 같고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더 낫다. 라는 이 말은 들척지근하다 뭐가 더 낫다는 거냐 뭘 그리 만날 빗대봐야 직성이 풀리느냐 말이다 그저, 죽는 것은 죽는 것이고, 사는 것은 사는 것이지 뭐가 더 낫다는 거냐 나는 조미도 감미도 다 싫고 그저 좀 살아보고 싶고 그저 좀 죽어보고 싶다 그러니 제발 어느 것이 더 나은 것인지 빗대지 마라 살 때 살고 죽을 때 죽어야 하지 않겠니 뭔가 좀더 나은 것을 찾다가는 아마 죽을 수도 없을 거야 *시집. 마르세유에서 기다린다, 문학동네 잠들기 전 - 손월언 누운 내 옆에 너는 늘 엎드렸다 둘은 잠을 청하는지 잠을 핑계로 이야기를 청하는지 이야기는 길었고 잠은 늦고..

한줄 詩 2019.02.02

그림자 든 골목 - 강재훈 사진전

눈여겨 보고 있는 사진가였는데 참 좋은 전시를 봤다. 강재훈은 한겨레신문사에서 오랜 기간 일하고 있는 저널리즘 사진가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는 보도 사진에 더해진 예술 사진이다. 전시장도 비교적 넓고 작품 또한 방대해서 실컷 좋은 사진을 감상할 수 있었다. 사진 속의 공간은 내게도 익숙한 공간이다. 아현동, 북아현동, 중림동, 만리동 등 개발 되기 이전에 지인들이 살던 곳이어서 자주 갔던 곳이다. 이후에도 울적할 때면 짧은 여행 삼아 만리동 고개를 넘어 청파동으로 이어지는 골목길을 자주 걸었다. 골목길 사진 하면 김기찬 선생이었다. 줄기차게 골목길을 카메라에 담아 여러 권의 골목길 사진집을 남겼다. 김기찬 선생의 뒤를 이어 강재훈이 골목길을 담고 있다. 이 전시에 나온 사진들에 담긴 공간은 사라진 골목길..

여덟 通 2019.02.02

죽는 게 두렵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 하이더 와라이치

호킹 지수(Hawking Index)라는 게 있다. 아마존에서 만든 거라는데 독자에게 책을 읽고 기억에 남는 문장을 적으라는 설문조사에는 대부분의 인용문이 책의 앞부분이었단다. 많은 독자들이 앞부분만 읽다가 책읽기를 그만 둔다는 것을 나타낸다. 드물지만 내 경우도 이럴 때가 있다. 까다롭게 책을 고르기에 잘못 선택하는 경우가 많지는 않다. 그러나 기대를 갖고 책을 골랐다가 경어체 문장의 책은 목차만 읽거나 몇 페이지 읽다가 만다. 이상하게 나는 편지 외에는 경어체 문장이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다. 내가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잘 사질 않는 것도 그 이유다. 글쓴이에 대한 기대를 갖고 주문했다가 설레는 마음으로 책을 펼쳤는데 경어체 문장에 실망감이 확 밀려오면서 그 사람의 다른 책까지 일체 안 읽게 된 경우도..

네줄 冊 2019.02.01

우물쭈물 우물쭈물 - 이진명

우물쭈물 우물쭈물 - 이진명 벌써 오래됐다 예전엔 내가 그렇게 우물쭈물한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 언제부턴가 완전 우물쭈물이 된 게 우물쭈물, 말도 생각도 몸도 우물쭈물 밤에 꾸는 꿈마저도 우물쭈물이다 따르릉 따르릉 비켜나라고 우물쭈물하다가는 큰일 난다고 하는 어린애들 노래가 있는데 정말 큰일 나겠다 어린애들 노래 속에서라면야 세발자전거에 콩 부닥치는 정도겠지만 정말 큰일 나겠다 달아나긴 달아나야 하는가본데 막 달아나야 하는가본데 *시집, 단 한 사람, 열림원 배꽃 시절 - 이진명 열일곱일라나, 저 배꽃, 배꽃들 하얗게 미쳐 피었다 나, 열 하고 일곱일 때 엄마가 상심한 듯 말했다 옛말에, 미쳐도, 이쁘게 미친다는 말, 있는데 네가, 그짝인 게, 아니냐 조그만 아니 커단 향낭이 순간 터진 듯 쓰거운..

한줄 詩 2019.01.31

14번째의 표적 - 백성민

14번째의 표적 - 백성민 남이 보지 못한다는 것이 그저 다행이라는 웃음의 뒤 끝에는 바늘 틈 사이로 무방비적인 허기가 한판 도박의 최면을 건다. 어린 숙녀의 눈부신 종다리가 바람을 탓하지는 않듯이 오늘 내게 온 허기진 한때를 부정하지 않는다. 가볍다는 이유 하나로 비상을 꿈꾼다는 것이 떨어져야 하는 필연성을 담는 것이라면 직각으로 상승하는 퇴화의 날갯짓을 더는 젓지 않으련다. 흐름을 멈춘 물이 막아진다고 숨어들 곳을 찾지 못하는 것이 아니 듯, 어느 한 때 소멸의 뒤편으로는 아직도 검은 강이 흐르고 그 강줄기 어딘가에 흘러야 하는 분명한 이유 하나 있다면 다시 올 허기가 반갑지 않으랴. 분명한 이유 하나 있다면,,,,,. *시집, 죄를 짓는 것은 외로움입니다, 아름다운사람들 백정 - 백성민 노련한 손놀..

한줄 詩 2019.0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