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쭈물 우물쭈물 - 이진명
벌써 오래됐다 예전엔 내가
그렇게 우물쭈물한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 언제부턴가 완전 우물쭈물이 된 게
우물쭈물, 말도 생각도 몸도 우물쭈물
밤에 꾸는 꿈마저도 우물쭈물이다
따르릉 따르릉 비켜나라고
우물쭈물하다가는 큰일 난다고 하는
어린애들 노래가 있는데
정말 큰일 나겠다
어린애들 노래 속에서라면야
세발자전거에 콩 부닥치는 정도겠지만
정말 큰일 나겠다
달아나긴 달아나야 하는가본데
막 달아나야 하는가본데
*시집, 단 한 사람, 열림원
배꽃 시절 - 이진명
열일곱일라나, 저 배꽃, 배꽃들
하얗게 미쳐 피었다
나, 열 하고 일곱일 때
엄마가 상심한 듯 말했다
옛말에, 미쳐도, 이쁘게 미친다는 말, 있는데
네가, 그짝인 게, 아니냐
조그만 아니 커단 향낭이 순간 터진 듯
쓰거운 향내가 확 끼쳤다, 심장까지
이상도 하지
나, 그때, 전혀
탈 없는, 하얀 여학생이었으리라, 생각하는데
너무 탈 없는, 그것이 바로 탈이 되어
하얗게, 죽음을 뒤집어쓴, 그림자 같은 거였을라나
배꽃시절이다
절정이다
미쳐도 이쁘게 미친다는 옛말 같은
자기 엄마가 어둠에 잠겨 떠듬거리는
그런 말의 매 맞지 않고서는
저 비탈에 뒤집어진 열일곱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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