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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무것도 안하고 있다고 한다 - 김사이 시집

기다렸던 시집이다. 김사이 시인은 단 한 권의 시집으로 내 가슴에 박힌 시인이다. 첫 시집에서 노동자들을 향한 따뜻한 시선과 세상의 부조리를 극복하려는 희망적인 몸짓이 인상적이었다. 쉬운 길로 그냥 묻어가지 않으려는 그녀의 반골 정신도 마음에 들었다. 거창하게 등단만 하고는 시 쓰기를 멈춰 잊혀진 시인도 있고 첫 시집 내고 영영 소식이 없는 시인도 있다. 한번 시인은 영원한 시인임을 증명하듯 시는 안 쓰고 잡문만 써서 시인이라는 이름표을 오래 울궈 먹는 사람도 있다. 김사이 시인은 비슷한 이름을 가진 중견 시인과 혼동될 때가 있다. 처음 이 시인을 접했을 때도 김사인 시인의 받침을 뺀 실수가 아니었나 생각했다. 김사이는 구로노동자문학회 출신의 여성 시인이다. 노동자 출신답게 말랑말랑한 시를 쓰지 않는다...

네줄 冊 2019.03.08

낭만에 대하여 - 최백호

최백호 - 낭만에 대하여 궂은 비 내리는 날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에 앉아 도라지 위스키 한 잔에다 짙은 색소폰 소릴 들어 보렴 새빨간 립스틱에 나름대로 멋을 부린 마담에게 실없이 던지는 농담 사이로 짙은 색소폰 소릴 들어 보렴 이제 와 새삼 이 나이에 실연의 달콤함이야 있겠냐만은 왠지 한 곳이 비어 있는 내 가슴이 잃어 버린 것에 대하여 밤 늦은 항구에서 그야말로 연락선 선창가에서 돌아 올 사람은 없을지라도 슬픈 뱃고동 소릴 들어 보렴 첫사랑 그 소녀는 어디에서 나처럼 늙어 갈까 가버린 세월이 서글퍼지는 슬픈 뱃고동 소릴 들어 보렴 이제 와 새삼 이 나이에 청춘의 미련이야 있겠냐만은 왠지 한 곳이 비어 있는 내 가슴에 다시 못 올 것에 대하여 낭만에 대하여 # 나이 먹을수록 좋아지는 노래다. 가사도 선율..

두줄 音 2019.03.07

복지사 날다 - 박형권

복지사 날다 - 박형권 대학 졸업하면 놀고먹는 것이 평균인 시대에 그녀는 청년실업의 딱지를 뗐다 정신과 폐쇄병동 복지사로 취직하였는데 거기는 정신분열과 알콜중독과 약간의 치매가 양송이버섯처럼 어울려 산다 페트병 다섯 병의 물을 마시고 물 중독으로 자살해 버린 새파란 청춘의 장례식장에서 수수팥떡이 올라오기를 기다리며 미술치료를 하는 날 치매는 똥 싸고 알콜중독은 오바이트하고 정신분열은 핵분열처럼 담배연기로 버섯구름을 피워 올렸다 치료는 무슨 치료 탁구대에 둘러앉아 울고 싶으면 울고 짖고 싶으면 짖고 쓰든지 그리든지 찢든지 물어뜯든지 마음 가는 대로 휘갈기는 자리였다 그런데 이게 뭘까 새 같기도 하고, 정신분열이 알콜중독에게 알콜중독이 치매에게 치매가 그녀에게 해죽해죽 웃으며 그녀가 날개를 펴고 하늘로 날아..

한줄 詩 2019.0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