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꽃 - 김왕노 나는 분꽃을 할머니꽃이라 부른다. 봉투에 할머니꽃이라 쓰고 해마다 서랍에 갈무리해 두면 다음 해에 마당에서 담 밑으로 동네 경로당 앞으로 할머니 걸음걸이로 한 발 한 발 걸어 나가서 핀다. 책상에 앉아 책을 읽을 때면 서랍의 분꽃 씨앗에서 할머니 숨소리가 웃음소리가 후렴구처럼 살아나 내 겨울 독서는 즐거웠다. 손녀를 치장해 주듯 각색의 꽃으로 세상을 곱게 치장해 주는 할머니 마음 겨울 깊어도 서랍 속에서 까만 씨앗으로 잠들어 있었다. 여름 내내 그 많이 피었던 꽃을 지우산처럼 안으로 접고 캄캄한 서랍 속에 곤히 잠든 할머니 꽃씨 분꽃 씨 생각만 해도 볍씨 몇 말 잘 갈무리해 둔 것같이 마음이 넉넉해졌다. 할머니 돌아가신 지 이젠 아득하나 올해도 할머니 모습이 건강하게 분꽃으로 송이송이 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