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하고 말하면 - 황형철 태풍 언저리에 회화나무 송두리째 몰골 드러냈다 맥아리 없이 한 방에 훅 간 것이다 평소 조경에 식견이 있는 모 씨가 말하기를 겉만 번지르르하지 스스로 뿌리 못 내린 탓이란다 영양제 잔뜩 맞춰 덩치만 키우기에 급급해 태생이 편편약골인 것이다 하물며 풀 한 포기도 뿌리가 굳고 실해야 하는 법이어서 마땅히 땅의 습성 충분히 익히고 땅이 받아들인 밤낮의 시간을 체득해야 하는 것 가장 막막한 곳에서 가장 힘차야 어둠을 열고 더 깊숙이 내려갈 수가 있어 비로소 단단히 흙 붙들 수 있는 것 짱짱하게 줄기 키워 꽃도 피울 수 있는 것 땅에 스민 그림자와 땅이 딛고 있는 허공까지도 내 것으로 받아들이는 겸허와 함께 하세월에 풍파도 견디며 내공을 쌓은 후에야 나이테를 두텁게 얻을 수 있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