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각근하다 - 박미경

마루안 2020. 7. 27. 21:53

 

 

각근하다 - 박미경


땡볕 아래 치약으로 운동화 씻어
장독대에 붙여 세워놓은
눈부신 흰빛에 반해서
혼자 아들 다섯을 먹여 살리던 옆집 아주머니
그 셋째아들
덥석 큰 짐 끌어안고 말았다는데
흰 운동화 덫에 걸린 여자
구두만 신고 다니는 여자
남편이 외박할 때마다 구두 사쟀다
신발장 채워지면 이혼한다며
그 신 잘 넘기기 위해
꼭대기 스물한 평 아파트 무너져라, 악쓰다가
밥상 차린다
남편이 좋아하는 흰쌀밥
조기 노릇하게 굽고 김 소고기찌개
공손하게 밥상 받은 남편
주저리주저리 그녀 노여움 살피며 털어놓는다는 말이
허파 뒤집는 일
너거엄마는내한테제삿밥먹으러오는거보면체면도없제
홧김에 조기 접시 뺏는 여자


*시집/ 토란꽃이 쏟아졌다/ 詩와에세이


 

 



욕쟁이의 호적 - 박미경


노쇠한 흙담이 집을 꼭 끌어안고 있었지
집은 울분을 삭이는 그 집 며느리 같았지
병색 짙은 아들 기침 소리
염소 울음만 담 구멍으로 흘러나왔지
페인트칠이 벗겨진 초록 대문 밀고 들어가
염소가 몇 마리인지 세고 싶었어
집 옆 돌계단 딛고 내려가면 빨래터 있었지
하얀 모시 저고리 금니
그이 눈빛은 예사 기세가 아니었어
아들 혼절했다가 깨어난 뒤
밭둑에서
육두문자 며느리에게 퍼부어댔지
여든, 베개를 업고 우물을 들여다보고 욕했지
그렇게 욕했대고도
풀리지 않는 마음으로 그이, 세상을 떠났지



 

*시인의 말

살구목지에 다녀왔다.
어른 두 사람이 껴안을 수 없던 살구목지 살구나무,
세월의 변화로 살구나무 우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수천수만의 잎으로 느릿느릿 나를 여기까지 데려다 주었다.
부끄럽고 두렵고 눈물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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