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달의 뒤쪽 - 김명인

마루안 2016. 8. 8. 09:00



달의 뒤쪽 - 김명인



비가 온다더니 낮달 떴다
허공에 물어뜯겼는지
반 나마 더 깎인 저기 저 달
아니 아직은 주량을 못다 채웠겠지
앞의 사내가 주인을 불러 다시 소주를 청한다


하필이면 남편이 운전해 가던 차에
곁에 앉은 아내만 즉사했나
살아남은 자 끔찍한 흉금
아무리 채워도 텅텅 비는지
자꾸 달의 이면을 들춰보자고 우기는 사내
소주가 벌써 세 병째다


풍랑이 이는가 시야를 거두며 배들
돌아 돌아들 간다 섬의 뒤쪽으로
거기 포구가 있다는 게지 끝내 채워 넣지 못할
환하거나 어두운 生의 허기
뜯겨버린 달의 반쪽 같은 것!



*김명인 시집, 파문, 문학과지성








절 아래 주막 - 김명인



벌써 몇 시간째 간이주점 평상에 주저앉힌 건
오늘 마감해야 할 일정이다
한 사람은 마주 앉은 사내의 불우가 안쓰럽다는 것이고
상대편은 이미 바닥 드러낸
앞 친구의 허장성세가 부질없다
서로에게 덧입혀진 세월 그 서먹서먹함은
산 사람의 그늘이므로 금세 축축해졌지만
그 사이로 흘렀던 정적 그리 만만한 것 아니었으리
저기 동구에서 시드는 오동꽃은 어느 해
늦봄을 마감하는가
들켜버린 마음의 누추 두고두고 생생해졌을까
함께 취하는 사이 남은 일정 걷어치우고
둘은 이쯤에서 하루를 끊어낸다
사내는 잘린 여정 속에 마련된 잠자리 팽개쳐 두고
한 유배지의 적소에 닻을 내린다


새벽에 잠이 깨 어스름 속으로 나서니
숲의 비질과 밤새 울음 다 꿈결이었나
하늘,구름 한 점 없이 청명하다
그러다 보니 오늘 저녁에는 호우주의보가 내렸었다
여명 속에서 오동나무도 뚝뚝 숙취을 터는지
축축 늘어뜨린 귓밥 가득 간밤을 들끓이던 천둥소리
아직도 흥건하게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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