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폐차장 가는 길 - 김종철

마루안 2016. 8. 14. 23:38



폐차장 가는 길 - 김종철



어중이떠중이 시절
기생오라비라 불리던 시절
그때가 참 좋았다
눈물 많고 자주 눈물 흘리게 했던
그때가 정말 그립다


폐차시키기 전
시동을 걸고 라이트를 켜보았다
그나마 건재했다
불온한 앞길에는 잘 적응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사정을 참고 미루었던
젊은 밤 하나가
반짝 스쳐 지나간다


중고차가 부담 없다고
흠집을 감쪽같이 잡아
잘 빠졌다라는 말에
선뜻 계약한 그날
차주가 된 나는
한밤에도 주차장에 내려와
기생오라비같이 빨고 핥았다


한때 나를 늙게 하고
또한 젊어서 후회하게 했던
나의 기생오라비야
세월 앞에는 장사 없다고
오늘은 폐차장 가는 날이다



*시집, 못의 사회학, 문학수첩








입관 - 김종철



개망초가 잘 보이는 날은
어디서나 울기가 좋다


비로소 생의 철조망 걷힌
당신의 저녁
머리를 감기고
똥구멍을 씻기고
발가락 사이 때 문지르고
입관을 끝내었다
물 없이 목욕하는
길 밖의 개망초와 함께.






# 김종철 시인은 1947년 부산 출생으로 1968년 <한국일보>와 1970년<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시집으로 <서울의 유서>, <오이도>, <오늘이 그날이다>, <못에 관한 명상>, <못의 사회학>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