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 있다는 것 - 김윤환
양계장에 밤새 켜 있는 백열등을 보고 주인에게 물었다 닭이 잠들면 알을 낳을 수 없다고 깨어 있어야만 알을 낳는다고 대답했다 깨어야 알을 낳는다는 것, 깨어 있어야 생명을 낳는다는 것, 참 가혹하면서 경이롭다 가혹한 새벽 무렵 한 알의 생명이 난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이 세상에 왔을지 몰라
살아 있음이란,
무정란의 깊은 잠
그 경계선에서
불면의 가혹함을 견뎌내는 것,
기어이 결가부좌를 틀고
알을 품는 것이 아닌가
*시집, 까띠뿌난에서 만난 예수, 시와에세이
사즉생(死卽生) - 김윤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아버지를 이야기했다 박정희가 죽고 박정희를 말하고 김대중이 죽고 김대중을 말한다 사람은 죽어서야 제 말을 듣는다 사람은 죽어서야 제 점수를 받는다 예수의 사람 바울도 자아가 살아 있을 때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라" 그렇게 부르짖었다 내가 살아있는 만큼 나에 대한 모든 말들은 번민이 된다
내 안에 꿈틀거리는 이단(異端)
나를 살린다고 자꾸 딴 말을 시킨다
내가 죽어야 내 말을 할 텐데
내 속의 나는 죽지 않고
그저 살려 달라고 소리만 친다
'한줄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시민의 낭만 - 박순호 (0) | 2018.01.30 |
---|---|
이제 우리가 사랑한다는 것은 - 류근 (0) | 2018.01.30 |
어둠의 경계 - 강영환 (0) | 2018.01.29 |
나를 만지다 - 박세현 (0) | 2018.01.28 |
달빛 속의 키스 - 박남원 (0) | 2018.01.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