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나를 만지다 - 박세현

마루안 2018. 1. 28. 19:39



나를 만지다 - 박세현



오랜만에 돌아와 내
빈 방을 바라본다


구겨진 삶이 누워 있다
마디 굵은 손끝에 만져지는
저 뒤틀린 생애


도둑의 발소리 같은 빗소리를 들으며
그렇다 빗방울 속으로 속으로
되도록 옹졸하게 숨고 싶다


오랜만에 돌아와 지친
숨결을 몰아쉬며
생활의 틈서리에서 서성대는
나의 껍질을 바라본다


내 삶은 틀린 것일까
온갖 세상의 분명한 목소리 사이에서
오랜만에 누워보는 나의 방에서
뼈만 남은 나를 만진다



*시집, 오늘 문득 나를 바꾸고 싶다, 문예중앙








오늘 문득 나를 바꾸고 싶다 - 박세현



무우 뿌리를 씹으며
나는 나와 통화한다
우리는 건널 수 없는 강이다
돌아오지 않는 강물이다
아삭아삭 부드럽고 생기 있게 씹히는
무우 뿌리와 흡사한 모순의 뿌리는 어디 있으랴
문득 나를 너라고 불러보고 싶다
생각보다 어려웠던 교환
너의 생애가 아삭이며 추문으로 바뀌고 있다
문득 나를 너라고 부르며
문득 너를 나라고 부르며
용서하는 법을 배우고 싶은데
아무도 나의 용서를 받아주지 않는다
이 조용한 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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