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적막에 기대어 - 성선경

마루안 2018. 5. 5. 23:21



적막에 기대어 - 성선경



이제 너를 벗하며 살아야겠네.
말 한마디 없이도 하루를 견디며
너를 이제 벗하며 살아야겠네.
저 파랑을 넘어서 여기
나는 이제 고요보다 수굿하니
이제 너를 벗하며 살아야겠네.
서산의 노을이 너를 기대어
불콰하니 잔을 권해도
말없이 잔을 받으며
이제 너를 벗하며 살아야겠네.
저 파랑을 넘어서니
세월도 다 적막하여
한마디 말없이도 하루를 견디며
노을보다 수굿하고
고요보다도 다소곳하네.
무엇이
무엇에
무엇을
생각하지 않으며
이제 너를 벗하며 살아야겠네.

 


*시집, <봄, 풋가지行>, 천년의시작








마술사 - 성선경



그들은 늘 새로운 것을 보여 줬다.
어떤 날은 꽃을 내보였고
어떤 날은 만국기를 꺼내 보였다.
내가 꽃을 알아맞힐 때쯤이면 비둘기를 날려 보냈다.
그들은 신기하게 내 짐작을 벗어났다.
그래도 그들은 커다란 무대의 단역에 불과했다.
그래도 때로는 더 많은 박수를 받곤 했다.
그들은 늘 새로운 것을 원했다.
어른이 박수를 치면 아이들도 덩달아 박수를 쳤다.
어떤 날은 난쟁이로 나왔고
어떤 날은 곱추로도 나왔다.
그래도 가장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것은 어릿광대였다.
붉고 푸른 화장이 즐거운 꽃밭인지
나비들같이 날개를 접었다 펴듯 박수를 쳤다.
그래도 그들은 늘 박수에 목말라 했다.
박수를 받고도 또 박수를 쳐 달라고 했다.
어떤 날은 꽃을 흔들었고
어떤 날은 만국기를 흔들었다.
그들은 늘 새로운 것을 보여 줬다
그들은 늘 새로운 박수를 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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