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반성 - 김연종

마루안 2018. 5. 4. 21:09



  반성 - 김연종



-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 어디서부터 잘못 되었는지 그리고 무엇이 문제인지
- 당신과 한마디 상의도 없이 섣부른 판결에만 의존한 것이 잘못이겠죠
- 영혼의 무게는 단지 21그램이라는 말만 믿고 오직 첨단기기에 의존하여 그 무게로 바탑을 쌓으려 했던 게 문제겠죠
- 사람이 사람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 또 얼마나 큰 죄악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아요
- 호흡기를 떼려는 순간 나도 무척 떨렸어요
- 산소처럼 끓어오르는 마지막 숨을 단번에 거두어 가는 것도 두려웠구요
- 거추장스러운 기기들을 비웃으며 편안하게 숨을 고르는 것도 두려웠어요
- 오늘도 당신의 모습을 똑바로 쳐다 볼 수가 없어요
- 더욱 평온해진 얼굴과 차분해진 숨소리를 보면서 그 동안 내가 바랐던 게 무엇이었는지 생각하면 온몸에 소름이 돋아요
- 변명만 잔뜩 늘어놓으며 언론에 읍소한 모습은 너무 초라하구요
- 곤히 잠든 당신 곁에서 아무 조치도 할 수 없는 내 자신을 생각하면 더욱 곤혹스러워요
- 진정으로 당신을 안락하고 존엄하게 하는 게 무엇인지 꼭 한 번 묻고 싶어요
- 당신은 이미 속마음을 밝혔지만 그래도 한 마디만 귀띔해주면 안될까요?
- 이제 당신의 운명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 아니, 미안해요
- 잠깐 또 내가 딴 생각을 품었어요
- 정말 죄송해요
- 안녕히 주무세요.



 *시집, 히스테리증 히포크라테스, 지혜








  독백 - 김연종



- 도대체 숨이 멈추질 않네요
- 호흡중추가 기억을 되찾았나 봐요
- 그러기에 진즉 호흡기를 뗐어야죠
- 그 동안 갑갑해서 죽을 뻔 했잖아요
- 오늘 아침, 드디어 죽음의 예배가 시작되었어요
- 목사님은 무엇을 위해 기도할까요?
- 하느님도 죽을 때를 모르시나 봐요?
- 그러니 예배를 마치고도 이렇게 숨이 멎질 안잖아요
- 호흡기를 떼고 나니 무척 홀가분한데 세상은 온통 난리가 났더군요
- 존엄하게 죽을 수 있는 첫 번째 행운을 내가 거머쥐었다고 야단법석이데요
- 내 눈물을 두고 모두 다 호들갑을 떠는 모양인데 언제부터 내 눈물에 대해 그렇게 관심이 많았죠
- 눈물샘이 막혔다가 숨통이 트여 조금 흘러내린 것뿐인데 꼭 내가 죽기 싫어 발버둥친 것처럼 대서특필 했대요
- 당신들 이야기 다 들었어요
- 이 한 몸 빨리 거두어 가야 현명한 판결에도 영이 서고 그 동안 치료에 대한 노고도 인정받고 무엇보다도 눈물을 글썽이며 기도하던 가족들의 체면도 살려줄 텐데 말이죠
- 아, 글쎄 죽기가 쉽지 않네요
- 아무래도 죽음은 타협이 아니라 숙명인가 봐요
- 의사들은 지독한 숙명론자라 들었는데, 이젠 정말 아무도 못 믿겠어요
- 운명에 기대는 수밖에요
- 한 숨 자고 나면 세상이 조용해 질 텐데 도무지 잠이 오지 않네요
- 링거액에 수면제나 좀 섞어 주세요
- 인터뷰는 사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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