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가을, 고맙다 - 황동규 산책길 언덕 양옆에 의젓하게 자리 잡고 선 자작나무들의 하얀 피부, 허나 지난 장마에 땅이 패어 길 위에 올려져 인간의 발길에 뭉개진 험상스런 뿌리들이 더 눈길을 끈다. 밖으로 나온 나무의 창자들, 땅속에서도 속은 속대로 썩혔는지 군데군데 쥐어짜듯 잘록해진 곳도 눈에 띈다. 내 창자도 꺼내보면 사람들 눈 돌릴 만큼 험상스럽지 않을까. 그러나 잠깐, 그건 그거고. 햇빛 가운데도 눈부신 이 가을 햇빛, 노란색보다 더 샛노랗게 길 양편을 색칠하는 저 은행잎들, 갓 말린 태양초 꼬리를 달고 맴도는 저 고추잠자리들, 산사나무 잔가지에 붙어 가볍게 산들대는 풍뎅이 등의 저 절묘한 녹갈색 광채, 하늘에는 몸 가볍게 줄이고 춤추듯이 흘러가는 구름 조각들. 고맙다. 밤에는 별빛이 서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