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얼굴이 전생처럼 - 김정경 나의 얼굴이 전생처럼 - 김정경 내가 모르는 사람처럼 지나갔다 울고 싶지 않아서 입속을 허밍으로 채운 날들 매달릴 곳이 차라리 사람이면 좋겠다 더 나이 들기 전에 내 집을 갖고 싶고 갈수록 병과 부음과 가까워 그날의 표정이 생겼어 맨정신으로 할 수 없던 말을 취하지 않고도 할 수 .. 한줄 詩 2019.11.11
너에게 가는 길 - 박서영 너에게 가는 길 - 박서영 -무덤 박물관에서 살아가는 일이 화살표 하나를 따라가는 것이어서 매표소에 들러 표 한 장을 끊고 새의 주중이 같은 화살표를 따라 갔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이 무덤에는 길을 가르쳐 주는 안내인이 있고 입구와 출구가 친절하게 표시되어 있다 적어도 나는 .. 한줄 詩 2019.11.11
내 곁의 먼 곳 - 전동균 내 곁의 먼 곳 - 전동균 잎 진 큰 나무 아래서 비를 맞는 건 즐거운 일 툭 툭 갈라지는 나무껍질을 쓰다듬으며 나는 중얼거리네 내 입술과 귀를 불태우는 그 말에게 묻고 대답하고 침묵하면서 먼 곳으로 가네, 새살처럼 돋아나는 통증을 안고 떠나는 것들, 돌아오는 것들의 발소리 분주한 .. 한줄 詩 2019.11.08
늦가을, 환치되지 않는 - 이성목 늦가을, 환치되지 않는 - 이성목 버린 꽃을 주워들고 킁킁 냄새를 맡다가 다시 내팽개친다 이별은 짧고도 강렬한 구두 뒤꿈치 같은 것 낭자한 꽃잎 아직은 벙글지 않아 알아볼 수도 없는 말들이 배부터 짓뭉개진다 저걸 개라고 할까 털이 많은 저걸 밤이라고 할까 길바닥에 넥타이를 질질.. 한줄 詩 2019.11.08
우리들의 서정 - 김안 우리들의 서정 - 김안 세상의 모든 집들마다 감람나무가 심겨져 있으니 우리에겐 진리가 불필요할지도 비유를 버리고 선언을 버리고 신념과 엄살 마저 버리고 예언하듯 당신은 자정 넘은 시각 구로역 지붕 아래에 서서 애인을 버리다가 부둥켜안다가 눈발을 맞다가 진창이 되다가 부끄.. 한줄 詩 2019.11.08
눈먼 사내 - 김태형 눈먼 사내 - 김태형 사람의 손이 더 크게 느껴질 때가 있지 태어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한 사람은 그렇다는군 손으로 만졌을 때 세상이 모두 다 크게 느껴지는 건 아닐 텐데 상대의 손만큼은 유독 크게 느껴진다지 발갛게 불을 켠 등처럼 온기를 품은 것들도 더 크게 느껴진다는군 어쩌면 .. 한줄 詩 2019.11.07
만추 - 정성환 만추 - 정성환 아침이 밝았는데도 달은 뜬눈으로 서 있다 다시 젊어진 아침 물고 와 푸른빛 토해내고 사라질 달빛 같은 나이, 중년이라는 것이 더는 물러설 곳 없어 물색 고운 낮에도 몽유하듯 떠돈다 발목 깊숙이 빠져드는 모래밭에 쭈그리고 앉아 신발을 털어내도 쉬이 떨어지지 않는 .. 한줄 詩 2019.11.07
나는 원래 두 사람이었다 - 김준현 나는 원래 두 사람이었다 - 김준현 우산은 갈증을 앓고 있다, 인간의 수만큼 많은 빗방울들이 질긴 몸으로 떨어지는데 그림자에 물을 주면 그림자가 자라니? 굴속보다 글속이 더 어두워서 나는 흐린 날에만 겨우 존재하고 있다 아름다움을 위해 신은 있다, 없다, 있다, 없다, 있다, 없다, .. 한줄 詩 2019.11.07
정오의 종소리 - 안태현 정오의 종소리 - 안태현 정오의 종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 너머를 알지 못해서 허공을 두드렸다 여러해살이풀처럼 허기가 목을 감고 알 수 없는 높이에 긴 팔을 뻗고 있었다 그곳은 나의 어떠한 범주에도 속하지 않는 곳 밥 먹으러 가자고 끌만한 사람이 살지 않는다 멀다 아주 멀어서 내 .. 한줄 詩 2019.11.06
희미한 전언 - 김시종 희미한 전언 - 김시종 손을 쬐면 빛이 술술 떨어져온다. 빛바랜 달력 입자처럼. 이렇게도 맑은 햇빛 속에서는 누구든 묵묵히 있을 수밖에 없다. 헤매면서도 갈 것은 간다고 스스로 자신을 타이를밖에. 벌거벗은 나무 끄트머리 감이 하나 빨갛게 선명하다. 모든 것이 바뀌어도 해마다 누군.. 한줄 詩 2019.1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