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겨울나무 - 김말화

마루안 2020. 2. 5. 19:55



겨울나무 - 김말화



슬픔을 끌어당기는 물관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근심 없는 듯 웃었으나 버짐처럼 번지는 각질
몸피에 흐르는 핏줄 툭툭 터지는 소리 들으면서도
엄살 한번 피울 수 없어 그저
소외되는 것만이 최선이란 걸


아픔이 깊을수록 나이테가 늘어났다
며칠 내내 시달린 고열에 실핏줄 터지고
뼈마디마다 멍들었는데 가슴은
아직 터지지 않았나봐 아프다는 건
쉽사리 열어놓기 힘든 비밀 문 같아
그럴수록 더 깊이 가라앉아 혼자인데


어제는
체관 속으로 흐르던 초록의 기억과
꿈속 다녀간 무수한 바람 때문에
선 채로 밤을 지새웠지
언 땅 아래서 자꾸만 시들어가는 뿌리에게
얼른 일어나, 얼른 일어나
토닥토닥 창백한 등을 두드려주면서



*시집, 차차차 꽃잎들, 애지출판사








쓸쓸 - 김말화



동백이 떨어져서 달이 뜹니다
그건 계절의 슬픔


그대는 먼 곳을 향해 있습니다
쓸쓸의 취향을 혈액형으로 알 순 없나요
가령 눈물 속에 꽃뭉텅이가 드리핑 된다든가
차가운 벤치 위에 한나절 앉아있다든가


홀로라는 말 짧게 내뱉고 길게 듣는 저녁
질기게 매달렸던 순간을 기억합니다
등이 시렸지요 늘 등부터 돌렸으니까요 오늘은
집착을 버리고 수백 송이 떨어지는 설움처럼
달뜨게 울어볼까 합니다


내 울음이 개미 발자국 소리보다 작거나
지상에 누운 꽃잎의 무게조차 안 되는
깊이를 가졌을지도 모릅니다
다만 이 낙화가 그대 때문이란 걸
차마 몰랐으면 좋겠습니다


떨구어도 떨구어도 자라는 게 달빛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