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춘설 - 김성장

마루안 2020. 2. 17. 19:28



춘설 - 김성장



엄마가 쌀을 빻아왔다 고목나무보다 느린 걸음으로 골목을 돌아오신 것이다


가으내 들일로 참깻대가 된 손에 찹쌀가루 버무린다 엄마는 내년 봄쯤 돌아가실 예정


팥 한 층 쌀가루 한 층 설설 뿌리시며 야 떡 먹구 싶냐 파도 부서진 물보라 처마에 쌓인다 



*시집, 눈물은 한때 우리가 바다에 살았다는 흔적, 걷는사람








파닥거리는 슬픔 - 김성장



눈물은 한때 우리가 바다에 살았다는 흔적


소금과 생애가 만나 짭짤해질 무렵


어깨의 해안에 밀려와 출렁이는 파도


슬픔은 초승달 주기로 찾아와 부서지지


등에 부서지며 가파른 벼랑을 만들고


다음 생이 기어오를 만한 낭떠러지를 만들고


튕겨 오른 물방울이 눈썹의 숲을 적시지


슬플 때만 둥글어지는 해안을 지나


날개를 접는 새처럼 파닥파닥


손등에 와서야 안심하는 밀물의 쓸쓸


움켜진 생애를 놓으며 말라가면 거기


하얗게 부서진 소금 가루 더 이상


야위지 않아도 되는 체온 식어가지






# 잘 정제된 순백의 슬픔이 이런 것일까. 문득 어릴 적 가물가물한 기억이 떠오른다. 풀 먹여 빳빴해진 하얀 새 이불을 덮었을 때의 서걱거리는 느낌 말이다. 이 시가 그렇다. 귀한 시루떡 대신 찐 고구마 한 알로 만족해야 했던 시절이었다. 얼음 깬 냇가에서 빨래를 하고 온 어머니의 붉게 언 손은 또 어떤가. 추억은 왜 자꾸 돌아가고 싶지 않은 그 시절을 불러 들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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