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줄 哀

아련한 설탕물의 추억

마루안 2018. 8. 15. 19:21

 

 

미증유의 폭염이 계속되는 요즘이다. 정말 삶아 죽일 듯이 덥다는 말이 실감 난다. 에어컨은 물론이고 선풍기도 없던 시절이 있었다. 장마가 시작되기 전쯤인가. 호박꽃이 처음 피기 시작할 무렵일 것이다. 엄마는 안방 창호지 문 절반 아랫쪽을 띁어내고 모기장을 쳤다.

 

그 무렵 오일장에 나가 여름옷과 함께 부채도 몇 장 사왔다. 이것으로 엄마의 여름나기 준비는 끝이다. 이때부터 밤이면 방문을 열고 드나들 때마다 행동이 빨라져야 한다. 문을 열고 조금만 늦장을 부리면 모기 들어온다는 엄마의 지청구를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모기향이 없던 시절이라 마당에 모기불을 피워야 했다. 밤에 화장실에 앉아 있을 때면 달려드는 모기를 잡느라 엉덩이를 철썩 때리면서 볼 일을 봤다. 그때는 화장실이라는 말이 없었고 변소였다. 학교에서도 변소라 불렀다.

 

냉장고도 없었기에 시원한 물은 우물에서 막 떠온 물이다. 아이스케키 사 먹는 것은 부잣집 아이들이나 누리는 호사였다. 한여름 뙤약볕에서 일을 하고 돌아온 어머니는 내가 떠온 우물물을 아주 달게 마셨다. 이따금 단것을 타서 마실 때가 있었다. 

 

물 따라 마실 컵이 어디 있었나? 엄마가 양푼에다 내가 우물에서 떠온 물을 붓고 사카린 몇 알을 넣어 숟가락으로 살살 저을 때면 내 입에서는 군침이 돌기 시작했다. 늘 나보다 엄마가 먼저 마셨는데 그 틈을 참지 못하고 나는 양푼 한쪽을 붙들고 엄마 그만을 외쳤다.

 

내 성화에 못이겨 엄마는 양푼에서 입을 뗐고 이제 절반쯤 남은 설탕물은 온전히 내 차지가 된다. 남은 물을 뺏길까봐 바닥이 보일 때까지 절대로 양푼에서 입을 떼지 않기 때문이다. 마치 백 미터 달리기를 끝낸 것처럼 긴 숨을 내쉬며 내가 입 주위에 남은 단물까지 혀를 길게 빼서 핥는 동안 엄마는 내가 비운 양푼에다 물을 조금 부어 양푼을 살살 흔들어 헹궈서 마셨다.

 

그때 식도로 내려가던 단물은 나를 황홀하게 했다. 나중 어디서 선물을 받았는지 내 손바닥 두 개쯤 되는 크기의 설탕이 생겼다. 그때는 명절이나 경사가 있을 때 요즘 갈비나 과일셋트처럼 설탕을 선물하는 풍습이 있었다. 엄마는 설탕 봉지 귀퉁이를 아주 조금 자른 후에 내 손바닥에 설탕 가루를 덜어주었다.

 

티스푼 하나 정도의 설탕을 나는 무슨 귀한 약이라도 된 것처럼 혀로 조금씩 핥아 먹었다. 모래처럼 껄끄러운 설탕이 혀에 붙어 달콤하게 녹을 때면 나는 황홀했다. 그때는 이런 표현을 몰랐겠으나 조금 과장해서 그 황홀함이 지금으로치면 사정할 때의 오르가슴과 비슷했을 것이다.

 

엄마는 설탕 봉지를 보자기에 싸서 높은 곳에 올려두고 오래 아껴 먹었다. 나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설탕물을 타 먹자고 졸랐고 엄마는 설탕물을 만들었다. 엄마는 단번에 설탕물을 만들지 않았다. 물이 담긴 양푼에 설탕을 조금 넣고 숟가락으로 휘휘 젓다 째개 간을 보듯 한 숟갈 떠서 후룩 맛보고 다시 설탕을 조금 더 넣어 휘휘 젓고 맛을 봤다.

 

설탕이 너무 귀해서 아끼느라 그랬을 것이다. 이 과정을 세 번쯤 해야 설탕물이 완성된다. 나는 꼬리 살랑대는 강아지처럼 엄마 곁에 바짝 붙어 침을 흘리며 그 과정을 지켜본다. 아는가. 양푼 바닥에서 사각거리는 숟가락 소리와 함께 설탕이 녹는 소리를..

 

어쨌든 그때 마신 설탕물이 어머니의 지극한 사랑이자 내 정서의 자양분이었음은 분명하다.

 

 

 

 

 

삼천포 아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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