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줄 映

용길이네 곱창집 - 정의신

마루안 2020. 3. 22. 18:59

 

 

 

재일교포 한인들의 애환을 그린 영화다. 시대 배경은 1960년대 후반 일본의 고도 성장 시기다. 2차 대전 이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김용길 가족 이야기다. 오사카 비행장 근처 조선인 마을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식당의 문패에는 金田이라는 성 아래 여섯 식구의 이름이 나란히 적혀 있다.

용길(아빠), 영순(엄마), 정화(큰딸), 이화(둘째), 미화(셋째), 時生(막내아들)이다. 용길은 일본의 제국전쟁에 끌려갔다가 한쪽 팔을 잃고 외팔이가 된다. 영순은 고향 제주에서 4.3 때 남편과 가족을 잃고 겨우 목숨을 건져 일본으로 피신했다. 

용길도 돈 벌어서 고향 제주로 돌아가려 했는데 4.3 때 온 집안이 몰살을 당했고 곧 이어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돌아갈 고향을 잃어버렸다. 큰딸과 둘째딸은 용길의 전처 자식이고 셋째딸은 영순이 제주를 도망칠 때 데려온 아이다.

막내 아들 시생(토끼오) 만이 두 사람 사이에서 난 자식이다. 딸들의 얽히고 설킨 연애담은 살아 남기 위한 원초적 본능이다. 한 남자를 두고 장애인 큰딸과 둘째가 다툼을 벌이고 그 남자는 큰딸과의 첫 사랑으로 고뇌한다.

셋째는 나이트클럽 지배인을 사랑하지만 그는 유부남이다. 부부는 지금껏 조선인이라는 차별 속에 살아왔기에 아들 만은 일본 사회에서 제대로 뿌리내리길 바랬지만 학교에서 왕따를 견디지 못하고 자살을 하고 만다.

이 영화를 보면서 최양일 감독의 피와뼈를 떠올렸다. 일본에서 살아 남기 위한 본능이 곳곳에서 펄떡거린다. 힘에 부친 가족들이 떠나겠다고 하면 아버지는 단호하게 타이른다. 우린 아무데도 갈 곳 없다. 여기서 살아야 한다. 아버지의 신조다.

아들이 죽고 난 후에도 가족은 꿋꿋이 살아 남는다. 사연 많게 흐르던 딸들의 사랑 싸움도 교통 정리가 된다. 식당 벽에는 여전히 한라산 사진과 하회탈이 걸려 있다. 큰딸은 남편을 따라 북으로 가고 작은 딸도 한국 남편을 따라 한국으로 떠난다.

일본인과 결혼한 셋째딸만 남는다. 국유지에 불법으로 지어진 주택들도 정리가 되고 용길네 곱창집도 문을 닫는다. 꽃잎이 날리던 날 리어카에 이삿짐을 싣고 용길 부부는 식당을 떠난다. 비행기 소리는 여전히 요란하다. 

이 영화는 재일동포 정의신 감독의 작품이다. 살아 남은 자의 슬픔과 살아 가야 할 자의 슬픔을 밀도 있게 그렸다. 생존도 사랑도 이 영화에서는 모든 게 위태위태하다. 영화를 보는 동안 웃음도 빵 터지고 여러 번 울게도 한다. 

어느 벚꽃 날리는 날 아버지가 말했다. 이런 날은 내일을 믿을 수가 있다고,, 맞다. 그러나 사람은 내일을 믿지 않아도 살아야 한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좋은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