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감자꽃 - 김지연 사진 산문

마루안 2017. 12. 18. 20:59

 

 

 

얼마전에 사진전에 갔다 와서 읽게 된 책이다. 전시회도 좋았지만 나는 며칠 동안 이 책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오십에 접어 들어서 시작한 사진가의 길이 칠십에 완성된 것이라 해도 되겠다. 오랫동안 향기를 품은 들꽃 같은 사진집에 들어있는 글 또한 너무 시적이다.

그러고 보니 작가의 사진도 시적이다. 수많은 사전전을 봤지만 이만큼 시적인 사진을 본 적이 있던가. 그의 사진전이래야 첫 전시회였던 정미소와 이번 감자꽃뿐이지만 감히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세상엔 널려 있는 시인 만큼이나 사진가도 널려 있다.

주말이면 값비싼 카메라에 유명메이커 아웃도어를 걸치고 떼로 몰려 다니면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일출이나 무슨 안개 자욱한 저수지 등이 그들이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출사지다. 기계에 의존한 사진은 아무리 뽀시시한 풍경이라도 금방 물리기 마련이다.

김지연의 사진은 그만의 특징과 정서가 있다. 사라져가는 것들을 묵묵히 작업한 지난 20년 간의 기록을 담은 책이 바로 이 감자꽃이다. 사진집 제목도 참 시적이어서 좋다. 실제로 감자꽃을 본 적은 없지만 어딘가 서러움이 묻어날 것 같은 꽃 아닌가.

그가 작업 중에 만난 사람들의 삶에 관심을 보이던 중 어느 시골 할머니에게 감자꽃을 들고 찍은 사진에서 따왔다. 풍경만 카메라에 담아 오는 사진사와는 달리 그의 사진에서는 사람 냄새가 난다. 하나 둘 사라지는 정미소 풍경에도 쓸쓸함과 함께 지난 세월이 온전히 담겨 회상에 젖게 만든다.

풍경과 함께 담긴 작가의 산문은 담백하다 못해 투명하다. 어쩌면 그가 뒤늦게 시작한 사진가의 길을 걷지 않았다면 시인이라도 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다. 사진과 시적인 글이 결합해서 아주 품격 있는 책이 완성된 것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사진도 잘 찍고 글도 잘 쓰는 사람에게 질투심이 생긴다.

책에 실린 작품을 나열해 보면 정미소, 정미소 그리고 십 년 연작, 나는 이발소에 간다, 묏동 연작, 근대화 상회, 낡은 방, 삼천 원의 식사, 빈 방에 서다, 자영업자 등 하나 같이 제목만 봐도 향수를 자극한다. 그래서 이 책도 50 이후가 읽으면 훨씬 감동적이다.

같은 풍경을 봐도 다른 시선으로 보면 작품이 된다는데 그의 사진을 보면 이 말이 정말 딱 들어 맞는다. 그러고 보면 사진은 아무나 찍을 수 있지만 작품은 아무나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실감한다. 긴 여운이 남는 사진집이 오래 기억될 것이다.

낡은 방의 사진과 함께 실린 그의 짧은 글을 올린다.
늙는다는 일 - 시린 무릎에 파스를 붙인다. 부는 바람 앞에만 서도 눈가에 자꾸 눈물이 고인다. 늙는다는 일은 죽음과는 별개의 고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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