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만들어진 간첩 - 김학민

마루안 2017. 12. 10. 20:33

 

 

 

초등학교 다닐 적에 매일 아침 학교 운동장에 모여 교장 선생님의 훈시를 들었다. 그 훈시에 간첩 신고를 해야 한다면서 간첩 찾는 방법을 알려주기도 했다. 간첩을 신고해 잡게 되면 엄청난 포상금이 주어진다고 했다. 그러나 내 주변에 간첩을 봤다는 사람도 포상금을 받았다는 사람도 없었다.

가수 김추자가 노래를 부르면서 추는 춤이 간첩들에게 보내는 수신호라는 소문만이 춥고 삭막했던 우리들 사이에 파다했다. 당시 나는 그 소문을 믿었다. 그 시절 매주 친구집에 놀러가서 흑백 테레비에 나오는 113 수사본부를 열심히 봤다. 토요일 밤에 방송된 걸로 기억을 한다. 그 때 간첩들은 나쁘기가 인간도 아니었다.

이 책은 없는 간첩을 만들어내는 이야기다. 서울대 최종길 교수가 간첩 활동으로 당국의 조사를 받던 중 자신이 간첩임을 자백하고 투신 자살했다는 것이 당시 보도였다. 그렇게 세상 사람들도 믿었다. 나는 어릴 때라 이 사건 보도를 기억하지 못한다. 후에 나의 20대에 장준하 선생 의문사와 함께 늘 거론되던 사건이 최종길 교수 의문사였다.

죽은 사람은 오래 전에 떠나고 말이 없다. 그러나 진실은 언젠가 밝혀진다. 최종길 교수가 죽었을 때 부검도 제대로 하지 않고 가족들에게 시신을 제대로 보여주지도 않고 서둘러 장례를 치르게 한다. 언론도 모두 침묵했다. 독재자 박정희보다 더 나쁜놈들이 독재자의 똥구멍을 빨아주느라 이런 사건 조작에 참여한 협력자들이다. 권력의 개란 말이 그냥 있던가.

영화 <자백>을 봐도 알 수 있듯이 간첩 조작 사건은 정보부의 치밀한 음모로 이루어진다. 최종길 교수도 그렇게 정보부의 음모로 만들어졌다. 처음부터 죽이려고 했던 것 같지는 않다. 간첩 사건을 조사 하던 중 고문을 했을 테고 그 고문으로 인해 죽자 그것을 덮기 위해 이런 시나리오로 각색했을 것이다. 우리가 눈을 부릅 뜨고 권력을 감시해야 하는 이유를 알려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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