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대한민국 병원 사용설명서 - 강주성

마루안 2017. 12. 8. 20:55

 

 

 

살면서 가능하면 가지 말아야 할 곳이 몇 군데 있다. 경찰서, 법원, 교도소, 병원 등이다. 그러나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그런 곳을 갈 수밖에 없다. 병이 났는데 병원 무시하고 버티는 것도 한계가 있다. 이 책은 병원을 이용하는 방법에 대해 말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의사나 병원을 불신한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병원도 이윤을 추구하는 곳이기에 무료봉사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환자를 정당한 소비자로 인식하고 공정한 거래 관계가 되었으면 한다. 병원과 환자의 관계처럼 종속적인 것이 있을까.

아무리 부당해도 울며 겨자 먹기로 감수해야만 하는 것이 환자다. 병원들은 동업자 정신으로 똘똘 뭉쳐 담합이 잘 되는 곳이라 병원을 선택하는 것도 쉽지가 않다. 부당함에 반발해 병원을 옮기고 싶어도 그 병원이 그 병원이기 때문이다. 반면 환자들끼리는 연대가 잘 안된다.

이 책의 저자 김주성은 자신이 오랜 병원 생활을 하면서 직접 겪은 의료계의 부당함에 대해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벗어나는 방법에 대해 말한다. 부당한 병원에 맞서는 가장 쉬운 방법은 병에 걸리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이건 불가능하다.

누가 병원에 가고 싶어서 아프겠는가. 인간의 어쩔 수 없는 숙명이다. 병원이 노리는 것도 이것이다. 저자 김주성은 백혈병으로 죽음을 앞뒀으나 동생의 골수 기증으로 살아났다. 그러나 백혈병 치료제의 엄청난 약값과 치료비로 전 재산을 날리고 분노한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은 속절 없이 죽을 수밖에 없는 약값 인하와 의료제도를 바꾸기 위해 싸운다.

그의 투쟁 덕분에 백혈병 치료제는 인하가 되었고 지금 의료보험이 적용되어 병원비로 고통 받는 환자들의 숨통이 트였다. 그가 백혈병에 걸리지 않았다면 이런 환자의 고통을 몰랐을 테고 싸우지도 않았을 것이다. 누구나 겪어야만 투쟁을 하는 것은 아니다. 이 사람의 싸움이 값진 이유다. 또 이 책에서는 병원에서 잘 알려주지 않는 제도에 대해서도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병원비가 없어 응급 치료를 받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국가가 응급 의료비를 대신 지불해주는 <응급의료비 대불제>, 중증환자들에게 3개월간의 병원비를 대폭 감면해주는 <중증환자 등록제>, 병원에서 부당하게 청구한 선택진료비나, 입원비 등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심사를 통해 환자에게 되돌려주는 제도인 <진료비 심사청구제> 등이다.

직접 당하지 않으면 모르고 지나칠 내용이지만 누가 이런 일에서 비켜갈 수 있는가. 사람 앞날은 아무도 모른다. 장애인을 무시하고 심지어 불편하게 생각했던 사람이 어느 날 교통사고로 장애인이 될 수 있다. 그때서야 장애인의 고통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 세상은 장애인이 살아가기가 얼마나 힘겨운지를 안다. 지금 필요한 것이 스마트폰 사용설명서가 먼저일지 몰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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