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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절없이 출렁이며 - 강시현

속절없이 출렁이며 - 강시현 당신은 죽어 별이 되리라는 뭉클한 말 때문에 가랑이를 벌리고 고통을 찢으며 나를 낳았지 안날 일기예보에 오늘은 유난히 별이 많이 쏟아지니 지붕에 난 창문을 잘 닦아 놓으라 했어 별들의 유혹이 닥쳐오리니 짓물러진 마음을 잘 묶어 두라 했어 올해는 별 농사가 잘됐어 풍년이야 산마루 가까이 지은 집은 하늘과 가까워 별숲이 더 반짝거려, 별들이 폭설로 쏟아져 별을 녹여 얼굴을 씻고 밥을 지어 먹지 어떤 날은 늙은 별들이 푹푹 쌓여 길을 지워 귀갓길을 잃기도 하지 아랫마을 노파는 보란 듯이 별의 숲에 묻혔지 여기엔 금고도 없고 도둑도 없지 별은 향기로운 스무살 가슴처럼 몰랑몰랑하지 아픔도 상처도 머물지 못하는 별의 무리 속으로 가뭇없이 지워져도 아무도 슬프지 못하지 나를 낳은 여자의 ..

한줄 詩 2022.04.10

북한산의 봄 - 김기섭

북한산의 봄 - 김기섭 미처 슬퍼할 새 없이 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 하지만 내가 사는 변방에는 아직도 눈이 내린다. 경계도 없이 내리는 눈 범람하는 바람 속으로 내 영혼의 머리칼 사이로 봄눈이 날리는 동안 마른 풀잎만 나풀거렸고 생각할 틈도 주지 않고 떠난 여자처럼 먼 산으로 날아간 새는 돌아올 것 같지 않았다. 마른기침을 쿨럭이며 객지에서 봄을 기다린다. 꽃이 피고 진들 무슨 상관있을까마는 노새를 타고 아득한 시공을 건너오는 이의 목소리 봄은 꿈꾸는 강을 건너 집시들의 언덕을 지나 더딘 몸짓으로 산기슭을 오르는데 보았는가 그대 창가에 핀 목련 세상의 모든 것들이 만나고 헤어지는 시점에서 내 몸에서도 여린 이파리들이 사사로이 돋아나고 밤새 시리도록 별들이 뜨더니 각혈하듯 산벚꽃이 핀다. 미열이 도져 아..

한줄 詩 2022.0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