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속절없이 출렁이며 - 강시현

마루안 2022. 4. 10. 19:41

 

 

속절없이 출렁이며 - 강시현

 

 

당신은 죽어 별이 되리라는 뭉클한 말 때문에

가랑이를 벌리고 고통을 찢으며 나를 낳았지

 

안날 일기예보에

오늘은 유난히 별이 많이 쏟아지니

지붕에 난 창문을 잘 닦아 놓으라 했어

별들의 유혹이 닥쳐오리니

짓물러진 마음을 잘 묶어 두라 했어

올해는 별 농사가 잘됐어 풍년이야

산마루 가까이 지은 집은 하늘과 가까워 별숲이 더 반짝거려,

별들이 폭설로 쏟아져

별을 녹여 얼굴을 씻고 밥을 지어 먹지

어떤 날은 늙은 별들이 푹푹 쌓여 길을 지워

귀갓길을 잃기도 하지

아랫마을 노파는 보란 듯이 별의 숲에 묻혔지

여기엔 금고도 없고 도둑도 없지

별은 향기로운 스무살 가슴처럼 몰랑몰랑하지

아픔도 상처도 머물지 못하는 별의 무리 속으로

가뭇없이 지워져도 아무도 슬프지 못하지

나를 낳은 여자의 눈 속에

별의 강이 출렁이며 흐르지

오늘 밤엔 찢어지는 통증에도 아무도 아프지 못하지

 

 

*시집/ 대서 즈음/ 천년의시작

 

 

 

 

 

 

쓸쓸한 몸 안에도 몇 됫박의 붉은 피가 출렁였지 - 강시현

 

 

쓸쓸한 몸 안에도

몇 됫박의 붉은 피가 출렁였지

 

방황하는 교차로에서 충돌하는 경적음

깜짝깜짝 놀라기만 할 뿐

날마다 살아 본 적 없이 살았고,

 

여생의 가벼운 주머니

남은 지폐를 한꺼번에 다 써 버릴까

노름판처럼 치열하게

목숨처럼 비열하게

 

회생을 기다리는 봄날은

현기증을 일으키는 노릿한 오렌지 맛이 나지

 

거울 속에 살다 가는 봄

유성기 스피커 같은 꽃이 피어

어떤 날은, 가연성(可燃性)의 하얀 웃음이 필요했지

 

 

 

 

*시인의 말

 

천망회회(天网恢恢)

 

삶도, 죽음도,

하늘이 쳐 놓은 너른 그물에

빠짐없이 걸려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