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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샅에 귀 하나 새겨 넣고 - 박위훈

어둠의 샅에 귀 하나 새겨 넣고 - 박위훈 발라진 울음이 낮다 한 부음이 자정의 담장을 넘는다 귀를 버린 내게 들리는 핏빛 이명 닳아 쉬어 터진 음정을 재생하는 엘피판처럼 어둠은 등을 맞댈수록 무딘 가시를 곧추세웠다 어떤 관절은 새소리를 달여 무릎이 서고 새벽은 음식물 봉투 속 불은 라면 면발을 딛고 온다 이슬의 찬 독배를 마신 돌배나무가 밤의 태엽을 나이테에 감으며 알려주던 당신의 적소(適所)에서부터 어둠이 시작됐다는 말 가까워질 수 없는 관계는 허기이거나 어떤 소외 식어 화석이 된 심장에 온기가 돋듯 활처럼 휜 허기가 어둠의 거푸집을 할퀼 때 달무리를 감싼 주검의 문양을 보았다 부패된 귀로는 새를 부를 수 없어 어둠의 샅에 귀 하나 새겨 넣고 너를 듣는 밤 나이테에 감기는 비명을 사뿐, 물고 가파른 ..

한줄 詩 2022.04.12

천국의 날씨 - 윤의섭

천국의 날씨 - 윤의섭 아직도 지워지지 않는 꿈의 잔영은 언덕 너머로 이어진 길이다 나는 미아였다 간신히 집을 찾아 들어갔으나 살던 집이라는 확신은 없었다 나는 미아의 미아다 어딘가라는 곳에 도착 중일 뿐이라는 해몽은 틀리지 않다 꽃이 피면서 동시에 지고 있는 벚꽃처럼 마지막으로 피어난 꽃도 모르고 가장 오래 살다 죽은 꽃도 알 수 없는 벚꽃의 연대기처럼 뒤엉킨 오후 나는 벚꽃을 분다 숨이 다 새어나가도록 끝은 다가오는 게 아니라 다가서서 만나는 것 일어설 이유가 없을 때까지 기진해 왔고 지친 사람들은 서로 곁에 오래 머문다는 것을 안다 그때 가장 적당한 온기다 *시집/ 내가 다가가도 너는 켜지지 않았다/ 현대시학사 루프 - 윤의섭 쪽창으로 하늘을 올려보는 아이 얼굴이 보였다 아이는 순식간에 늙었다 돌아..

한줄 詩 2022.04.12

삼척 간첩단 조작 사건 - 황병주 외

소설보다 재미있는 책을 읽었다. 어릴 때 초등학교는 국민학교였다. 아침이면 전교생이 운동장에 서서 교장 선생님의 훈시를 들었다. 그때 꼭 하던 이야기가 간첩신고였다. 신고를 하면 복권 당첨처럼 큰 상금을 받는다고 했다. 간첩으로 의심되는 정황을 세세히 설명했다. 특히 유난히 친절한 사람이나 담배값을 모르는 사람을 의심하라 했다. 귀에 박히도록 듣던 간첩 이야기라서 이런 책을 보면 눈에 확 들어온다. 실제 간첩도 있었겠으나 대부분 만들어진 간첩이었다. 간첩 하면 북한에서 내려온 거라 생각했으나 나중 커서 남한에서도 간첩을 보냈다는 걸 알았다. 이 책은 역사문제연구소 부소장인 황병주 선생 등 연구원들 네 명이 공동으로 쓴 책이다. 내가 소설을 잘 안 읽는 이유도 이런 책이 훨씬 울림이 있기 때문이다. 세상엔..

네줄 冊 2022.0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