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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 무소유, 산에서 만나다 - 정찬주

이 책은 법정 스님의 일대기를 그린 여행기라고 하겠다. 작가 정찬주는 승려는 아니지만 법정 스님의 제자다. 예전에 샘터사에서 일 할 때 스님이 책을 내면서 인연이 닿아 평생 스승과 제자로 연을 맺었다. 법정 스님은 입적하기 전 세상에 말빚을 남기고 싶지 않다면서 자신의 책을 전부 절판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래도 정찬주 선생은 스님을 잊지 않고 이렇게 들꽃 향기가 나는 책을 썼다. 이 책도 스님에 대한 회상기다. 법정 스님이 태어난 곳부터 입적한 곳까지 스님이 살다간 흔적을 찾아 나선다. 스님의 속명인 박재철 소년은 어떤 아이였고 어떤 교육을 받았고 어느 계기로 출가하게 되었는지를 세세하게 따라 간다. 그 사람이 걸어온 길을 보면 정체성을 알 수 있다. 예전에 스님이 쓴 책 무소유와 말의 침묵을 참 열심..

네줄 冊 2022.04.14

살림 차리고 싶다 - 고성만

살림 차리고 싶다 - 고성만 햇살이 뽀얗게 불어터진 젖 물리면 내가 좋아하는 숙자와 이사 가고 싶다 한 번도 살아보지 않은 동네 작은 방 얻어 들어가고 싶다 떠돌이 악사와 그 애인이 밤새 다투는 소리 샤워하는 소리 키들거리는 소리 서울행 열차가 우르르 지나가는 기찻길 옆 퉁퉁 분 오줌보 비우려 밖으로 나서면 반짝이는 잔별들 한 시절 곱게 늙어가는 약국 고소한 냄새 풍기는 빵집이 있는 네거리 하루하루 쫓기는 탈주범처럼 중고 제품 판매 구인 구직 급전 대출 아르바이트 모집 생활 광고지 죄다 뒤져 살림 차리고 싶다 눈도 코도 오목조목한 숙자와 함께 알록달록 고운 그릇들 장난감 같은 가재도구들 "아이 예뻐!" 호들갑에 맞춰 근사한 미소 흘리며 까짓것 한 번 사는 인생, 큰소리치면서 이불장 빨래걸이 앉은뱅이상 창..

한줄 詩 2022.04.13

버려지는 것들에 대하여 - 김명기

버려지는 것들에 대하여 - 김명기 강아지 다섯 마리와 다리 부러진 고양이 한 마리를 데려다 놓으니 날이 저문다 이 좋은 가을날에도 태어나 버려지는 것들이 있어 저마다 살겠다고 어둡고 습한 곳으로 숨어든다 잊지 못한 자궁의 기억 때문일까 엉덩이를 돌린 채 고개를 파묻고 몸을 떤다 작은 몸에 손을 대면 고스란히 손끝에 전해지는 두려움 지붕을 맞댄 낡은 집들이 세상의 처음이자 전부인 곳에서 아무리 달래 보아도 눈빛은 돌아설 줄 모르고 털뭉치 같은 몸을 더듬는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희미한 신음이 너무나 살고 싶다는 말 같아 나도 신음처럼 그래그래 입내 소리를 어둠 속으로 흘려보내며 무릎 꿇고 팔을 뻗는다 겨우 한자리에 모아 놓은 출처 알 수 없는 생들 어느 집 갈라진 아궁이 속 어둠이 그대로 남은 새까만 눈..

한줄 詩 2022.0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