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샅에 귀 하나 새겨 넣고 - 박위훈
발라진 울음이 낮다
한 부음이 자정의 담장을 넘는다
귀를 버린 내게 들리는 핏빛 이명
닳아 쉬어 터진 음정을 재생하는 엘피판처럼 어둠은
등을 맞댈수록 무딘 가시를 곧추세웠다
어떤 관절은 새소리를 달여 무릎이 서고
새벽은 음식물 봉투 속 불은 라면 면발을 딛고 온다
이슬의 찬 독배를 마신 돌배나무가
밤의 태엽을 나이테에 감으며 알려주던
당신의 적소(適所)에서부터 어둠이 시작됐다는 말
가까워질 수 없는 관계는 허기이거나 어떤 소외
식어 화석이 된 심장에 온기가 돋듯
활처럼 휜 허기가 어둠의 거푸집을 할퀼 때
달무리를 감싼 주검의 문양을 보았다
부패된 귀로는 새를 부를 수 없어
어둠의 샅에 귀 하나 새겨 넣고 너를 듣는 밤
나이테에 감기는 비명을 사뿐, 물고 가파른 어둠을 딛는
나는, 곤줄박이 노래만큼 높은 것 없다며
발톱을 감춘 나는
야옹이다
*시집/ 왜 그리운 것들만 더디 바래지는지/ 상상인
별의 미장센 - 박위훈
여기는 고립된 아고라의 제단
제사장의 휘둘리는 붓으로나 전생이 가늠될 뿐
방치된 채 오래 붙박여왔다
뜨거운 심장이 서서히 식어갔듯
형상으로 사육되거나 신화로 살아온 날들이
미필적 구속이었음을 알았을 땐
지층의 일부로 진화된 뒤다
어떤 아우성이다
어느 연대기의 짧은 구절로 기억되거나
바래 읽지 못할 문장으로나 남을
오롯한 인연이다
주검을 섬기려 또 다른 주검을 탁발한 오류다
잊히기 위해 잡혔단 말은 소통을 위한 변명
어떤 게 최선인지 몰라 화살은 매번 과녁을 비껴가고
생의 기대치는 늘 부재의 방죽을 넘는다
청동의 부러진 바퀴살은 퇴화된 시제
툭 던진 빈말이 아직 영원을 달리는 것처럼
무관심만큼 무서운 폭력은 없다
클릭 한 번에 박제된 외벽이 사라진다
찰나는 얼마나 긴 구속인가
시간의 층위가 광장의 서열이 될 수 없듯
발기를 영영 잊은 야생이
야사로 수장될 때
지층을 둘둘 말아 별자리로 이주하는 무리들
피안 너머까지 빛낼 뭇별처럼
다투어 허공의 품을 밝히는
너는,
# 박위훈 시인은 2020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당선, <문예감성>으로 등단했다. <왜 그리운 것들만 더디 바래지는지>가 첫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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