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천국의 날씨 - 윤의섭

마루안 2022. 4. 12. 22:25

 

 

천국의 날씨 - 윤의섭

 

 

아직도 지워지지 않는 꿈의 잔영은 언덕 너머로 이어진 길이다

나는 미아였다

간신히 집을 찾아 들어갔으나 살던 집이라는 확신은 없었다

나는 미아의 미아다

 

어딘가라는 곳에 도착 중일 뿐이라는 해몽은 틀리지 않다

꽃이 피면서 동시에 지고 있는 벚꽃처럼 마지막으로 피어난 꽃도 모르고 가장 오래 살다 죽은 꽃도 알 수 없는 벚꽃의 연대기처럼 뒤엉킨 오후

 

나는 벚꽃을 분다

숨이 다 새어나가도록

 

끝은 다가오는 게 아니라 다가서서 만나는 것

 

일어설 이유가 없을 때까지 기진해 왔고

지친 사람들은 서로 곁에 오래 머문다는 것을 안다

 

그때

가장 적당한 온기다

 

 

*시집/ 내가 다가가도 너는 켜지지 않았다/ 현대시학사

 

 

 

 

 

 

루프 - 윤의섭

 

 

쪽창으로 하늘을 올려보는 아이 얼굴이 보였다

아이는 순식간에 늙었다 돌아온다

그 사이

비가 내리다 그친 사이

할머니가 죽었고 꽃이 졌다

 

처음부터 기록은 베껴 쓰기일 뿐이었다

나보다 먼저 하늘을 올려다 본 아이들은 많다

 

파도는 매서웠고

태풍이 다가온다고 했다

언제부터 여기 서 있었던 것인지에 대해 궁금해진 건

내륙으로 발길을 돌리기 직전이었다

 

잠시만 허락된 예지자일 때가 있다

멀리 갔다 돌아올 때다

 

쪽창으로 태풍의 하늘을 올려보는데

누군가 쪽창을 들여다보고는 발길을 돌린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