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4746

내 무릎에 앉아 - 류흔

내 무릎에 앉아 - 류흔 내 무릎에 어머니가 앉아 토닥 토닥 등을 두드린다 하나의 종(種)으로써 관조할 거야 전반적으로 조용하던 밤이 부스럭댄다 죽지 말라고, 솔직히 어머니가 죽지 않았으면 한다 밤을 눈물 쪽으로 옮긴다 새벽이 되어 흐르는 방울을 보라 너도밤나무처럼 다년생 슬픔들이 돋아있다 나도 그러하냐? 미량의 관능도 용서치 않을 거야 정직한 신음은 정상위에서 흘러나오지 나는 시험에 들었으므로 대학에 가서 미학을 배웠다 아름답고 다정한 원소(元素)를 골고루 나눠주었다 내 무릎에 애인들이 앉아서 셔츠 안으로 쓱 손가락을 넣어 젖꼭판을 슬 슬 문지를 때 나는 또 하나의 종을 염두에 두었다; 외부에서 내부로 탈출하는 우세한 감정의 무리들 저 온유한 쾌락을 무어라 명명하지? 시간은 콸콸 추억 깊은 계곡에서 흘..

한줄 詩 2022.05.12

거미집 - 한명희

거미집 - 한명희 첫째도 성실 둘째도 성실 셋째도 성실 수평으로 걸려 있는 사훈 아래 삐딱하게 서 있는 현황판과 부서진 의자가 거미집을 키우고 있는 가구 공장 사무실 지켜보다가 계속 외면하다가 맺힌 빗물이 저도 모르게 찔끔 떨어졌는지 공장을 덮고 있던 구름이 뜨는 해를 기다리다 제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땀만 흘리다 사라졌는지 연극과 영화가 눈이 맞아 세상 물정 모르는 스물여덟이었다가 연기도 안 되고 얼굴도 안 돼서 몸이 되는 막노동으로 살다가 만난 여자와 나이 마흔이 넘어서야 찾아온 거미집 -이름 모를 곤충들의 날개와 누군가의 목숨과도 같이 흔들리는 줄에 이슬방울만 방울방울 달고 있는 창가엔 먼지를 뒤집어쓴 탁자와 뚜껑 열린 주전자가 주둥이를 삐죽 내민 채 있고 막걸리 자국 선명한 컵들은 지붕조차 사라진..

한줄 詩 2022.05.12

다음이 온다 - 김태완 시집

공감과 감동은 비슷한 듯하면서 다른 감정이다. 물론 공감이 가야 감동을 할 것이다. 이 시집은 둘 다 해당된다. 내 일방적 주장이다. 김태완 시인은 잘 알려지지 않은 시인이다. 전업으로 시를 쓰며 먹고 사는 사람은 거의 없으니 이 시인도 전업 작가는 아니다. 아마 전업이었다면 이미 굶어 죽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한국에는 시 읽는 사람보다 시 쓰는 사람이 더 많다. 안 쓰고는 못 배기는 사람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하긴 누가 시켜서 쓰는 시라면 얼마나 고역일까. 무슨 인연 때문인지 이 시인의 시집을 모두 읽었다. 는 다섯 번째 시집이다. 낮은 곳을 향한 따뜻한 시선은 첫 번째 시집부터 초지일관이다. 이 시인도 시를 쓰지 않고는 못 배기는 팔자를 타고 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시집에도 여전히 공감 가는 시가..

네줄 冊 2022.0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