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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기억할 것이 있다 - 박래군

인권운동가 박래군 선생의 책은 꼭 읽으려고 한다. 그는 시종일관 남들이 시선을 주지 않는 곳에 눈길을 준다. 이 책은 아프게 살다 간 사람들의 흔적을 따라 간 눈물 자국이다. 동학농민혁명, 천주교 순교, 진주 형평사운동, 육이오 민간인 학살, 동두천 기지촌 등 상처 받은 사람들의 현장을 찾아 나섰다. 이런 곳이 제대로 보존되어 있을 리 만무하기에 희미한 흔적을 되살리기 쉽지 않다. 특히 광주대단지 사건 현장과 진주 형평사 운동, 동두천 기지촌 현장이 인상적이다. 흔적 없이 사라졌거나 관심 두지 않으면 눈에 띄지도 않을 초라한 기념물이 더욱 아픈 흔적들이다. 이 책의 제목처럼 상처는 언젠가 말을 한다. 독립 운동을 한 것도 숨기고 살아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하물며 빈민이나 하층민이었음이 드러날 이런 현장..

네줄 冊 2022.05.15

사근진 - 심재휘

사근진 - 심재휘 오래전에 철거된 무허가 소주집은 경포 해변의 끝이었다 이름이 없고 사방이 유리창이어서 그냥 유리집이었다 한뼘 더 변두리인 사근진이 잘 보였다 경포에서 북쪽으로 지척인 사근진은 불 속에 침묵을 넣고 그릇을 만든다는 사기 장수의 나무 여름 해변의 가장자리에 놓여 경포도 아니고 그 너머도 아닌 가을의 변방 이를 테면, 추워져서 우리는 유리집에서 소주를 마셨던 것인데 할 말이 없어지면 겨울 사근진은 파도 소리를 데리고 유리집에 조금 더 가까이 왔다 유리집이 사라져도 사근진은 남아 사근진이 없다면 말없이 조금 먼 곳을 바라볼 경포도 없을 것이다 *시집/ 그래요 그러니까 우리 강릉으로 가요/ 창비 어떤 면접 - 심재휘 두명의 입학사정관 앞에 혼자 앉은 그는 문경에서 어제 저녁차로 올라왔다 한다 서..

한줄 詩 2022.05.15

봄밤의 일기 - 박위훈

봄밤의 일기 - 박위훈 세상의 귀란 귀는 다 닫아걸고 나를 들어줄 눈은 먼데다 두고 왔다 이를테면, 귀를 자른 어느 화가의 헐은 생애 같았지만 아무도 간섭할 수 없는 공중의 일 같은 거였다 보릿대 총총 푸른 불을 켜고 바람벽은 높고 높아 헛발질로도 닿을 수 없는 너와의 보이지 않는 불신의 간격처럼 거기, 다가설 수 없는 친연의 거리 갈대들이 서로 몸 비벼 겨울을 건너듯 뻐꾸기도 제 울음 한껏 불어재꼈던 그때 애끓는 탁란의 일기가 숲의 문장을 완성해 간다 구름의 등에 올라야 비의 내력을 알 수 있듯 바지게가 흘리는 달빛 몇 줌이 어둠을 품었던 것처럼 울음을 삼키며 천형의 날들을 견뎌야 했다 근본보다 중요한 것은 살아남는 일 누가 저 애면글면한 풍경에 혀를 차도 다만, 어미의 어미의 길을 좇을 뿐 떡국, 풀..

한줄 詩 2022.0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