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4746

병원 정문에서 - 신철규

병원 정문에서 - 신철규 병원 정문 앞 과일 노점상 붉은 사과가 차곡차곡 쌓여 있다 아담과 이브의 타락 치욕의 공동체 누구나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다 늙음은 몸이 구부러지고 작아진다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병원은 절망의 늪이고 누군가에게는 갱생의 회랑이다 겨울 햇살을 온몸으로 받으며 들어간 사람들 자신의 그림자를 보며 걸어나온다 언제부터 절망은 희망보다 더 깊고 짙어졌는가 불안과 원망은 왜 한통속인가 입안이 헐었다 음식에 손이 가지 않았다 당신이 그렇게 뜨겁고 쓰렸던 것도 다 내 안이 헐었기 때문이다 하늘이 헐었다 구름이 따갑다 나보다 내 그림자가 먼저 바닥에 널브러져 있다 노점상 앞 걸인은 여전히 엎드려 두 손을 모으고 있다 햇살 한 줌이 고여 환하다 성자처럼 일어나 내 손을 움켜쥘까봐 저 한 줌의 구..

한줄 詩 2022.05.09

돋보기의 시간 - 정덕재

돋보기의 시간 - 정덕재 온라인 서점에서 날아온 상자를 열기 전에 칼이나 가위를 찾아야 하고 추리소설에 어울리는 목차가 제대로 되어 있는지 돋보기를 찾아야 한다 테레비를 보기 위해 리모컨을 찾는 시간 자동차를 타려고 열쇠를 찾는 시간 전화를 걸기 위해 휴대폰을 찾는 시간 모든 사물과 일체가 된 시간을 모아 놓고 습관과 게으름과 욕망 사이에서 잘못의 경중을 따지기 전에 목차를 읽는 돋보기는 찾아야 한다 오래전 살인사건의 혈흔을 찾던 돋보기는 낡아졌고 카펫 위 엉뚱한 머리카락을 찾다가 한가한 빛으로 들어온 오목렌즈 놀이로 태워 버린다 보청기는 없더라도 상자 밖으로 새어 나오는 파열음을 추적하기 위해 돋보기는 찾아야 한다 거기에 살해당한 문자들이 묻어 있을 것이다 *시집/ 치약을 마중 나온 칫솔/ 걷는사람 5..

한줄 詩 2022.05.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