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렵 - 김화연 무렵이란 말 좋지 마지못해 기울어진 즈음, 자칫 잘못하면 미끄러지거나 빨려 들어가기 쉽지 모든 것을 두고 온 곳이거나 모든 것을 가져다 놓을 수 있는 곳 시소처럼 무거운 것은 뜨고 가벼운 것은 내려앉는 그런 무렵 꽃들이 무더기로 피어도 좋고 붉게 하교하던 노을이나 제철 꽃들의 기억을 모두가 나누어 갖고 있는 그 무렵들 하루에도 몇 번 있고 한 달에도, 몇십 번 있는 움직이는 무렵 아득한 핑계들을 모아도 좋은 그립다고 말해도 좋고 지긋지긋하다고 진저리를 치기도 좋은 해 질 녘 만나면 추적추적 내리는 홑겹의 비를 덮고 낮잠을 자도 좋은 그런 저런 무렵들 어디까지 가는 스산함일까 가을 들녘을 아지랑이처럼 걸어와 흰 머리카락을 벗기다 갈 이런저런 소문으로 마무리되는 무렵들 비스듬한 날씨나 특별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