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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렵 - 김화연

무렵 - 김화연 무렵이란 말 좋지 마지못해 기울어진 즈음, 자칫 잘못하면 미끄러지거나 빨려 들어가기 쉽지 모든 것을 두고 온 곳이거나 모든 것을 가져다 놓을 수 있는 곳 시소처럼 무거운 것은 뜨고 가벼운 것은 내려앉는 그런 무렵 꽃들이 무더기로 피어도 좋고 붉게 하교하던 노을이나 제철 꽃들의 기억을 모두가 나누어 갖고 있는 그 무렵들 하루에도 몇 번 있고 한 달에도, 몇십 번 있는 움직이는 무렵 아득한 핑계들을 모아도 좋은 그립다고 말해도 좋고 지긋지긋하다고 진저리를 치기도 좋은 해 질 녘 만나면 추적추적 내리는 홑겹의 비를 덮고 낮잠을 자도 좋은 그런 저런 무렵들 어디까지 가는 스산함일까 가을 들녘을 아지랑이처럼 걸어와 흰 머리카락을 벗기다 갈 이런저런 소문으로 마무리되는 무렵들 비스듬한 날씨나 특별한..

한줄 詩 2022.05.08

슬기로운 좌파 생활 - 우석훈

가뜩이나 편 가르기가 심한 시절에 이런 책이 나왔을까 싶지만 참 좋은 책이다. 너네 쪽에서 먼저 편을 갈랐다고 책임을 떠넘기지만 사람 사는 세상에 편 가르기는 있기 마련이다. 사람 셋만 모여도 의견 일치가 쉽지 않은데 5천만이 넘는 나라에서 편 가르기는 생길 수밖에 없다. 왼쪽 오른쪽뿐 아니라 강남북, 동서로 갈려 있는 게 현실 아닌가. 이런 편 가르기를 무조건 나쁘게만 볼 수 없다. 단지 편이 다르다고 반대만 할 게 아니라 서로 인정할 건 인정하고 싸우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나는 절대 악플을 달지 않는다. 그 악플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연이어 달리는 대댓글로 말꼬리 잡기로 변하기 때문이다. 우석훈의 책은 대부분 읽는다. 우선 이라는 책 제목이 마음에 든다. 이 사람 특유의 맛깔스런 ..

네줄 冊 2022.05.08

오늘이라는 이름 - 이기철

오늘이라는 이름 - 이기철 밀물이 안 올까 봐 썰물이 소리 내어 우는 건 아니다 해 질 녘 동해 바다는 모래톱까지 달려와서 운다 바다는 지구의 끝인가 시작인가, 물으며 내 안에 와서 금을 긋던 사람들 흉금 안쪽에 파란 색칠을 하던 사람들도 묻다가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다 그 블랙홀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사람들은 추억이라 부르지만 나는 속도라 부른다 추억의 몽리구역까지 갔다 오는 데는 실로 한생이 걸린다 나는 인간의 시간을 걸어 여기까지 왔다 나는 농막에도 앉고 테트라포드에도 앉아 별점 치다 한 세기를 놓쳐 버렸다 놓친 세기는 역사박물관으로 간다 오늘은 모래의 밥을 먹으며 타고 남은 속마음을 바느질한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오늘의 슬픔을 어디다 잠가 두면 새어 나가지 않을까 생각다가 갓 핀 잠자리난초를..

한줄 詩 2022.05.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