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진금지 - 김명기 직진금지 표지판 앞에서 그대로 내달리고 싶었다 아버지는 입버릇처럼 내려다보지 말고 쳐다보고 살라고 말했지만 쳐다본 곳까지 오르지 못한 채 엄나무뿌리보다 더 낮은 곳으로 내려가셨다 긴 시간 아버지는 세 시 방향 나는 아홉 시 방향으로 꺾어져 서로 다른 곳을 쳐다봤다 간혹 여섯 시 방향을 향해 돌아섰지만 서로에 대한 이해라기보다 화석처럼 굳어 버린 혈연의 회한을 확인할 뿐이었다 생각과 몸은 바뀌어 갔으나 열두 시 방향에서 만난 적은 없다 아버지가 생의 간판을 접고 폐업하는 순간에도 나는 등을 돌리고 울었다 산다는 건 그냥 어디론가 움직이는 일이란 걸 알았지만 경험의 오류를 너무 확신했다 어쩌다 녹슨 족보에서나 쓸쓸하게 발견될 이름들이 숱한 금기 앞에서 내버린 시간 껴안지도 돌아보지도 못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