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소문처럼 너는 가고 - 강회진

마루안 2022. 6. 17. 22:34

 

 

소문처럼 너는 가고 - 강회진

 

 

네가 죽었다는 소식을 소문처럼 들었다 마치

 

모두가 잠든 밤 너는 폭설이 내린

시베리아자작나무 숲으로 들어가 버렸나

급하게 가느라 맨발로 떠난 것 같아

생각하는 나는 손발이 시렸다

 

가만히 일어나

오래전 누군가에게 받은

녹슨 반지를 찾아 손가락에 걸어보았다 마치

이제야 약속이 기억 난 듯

 

이제 죽고 없는 너와 반지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지키지 못한 어떤 약속 하나가 생각났을 뿐

먼 먼 몽골, 전생에 우리는 다섯 번 보다는 더 만났겠지

그러니 여섯 번째 전해들은 너의 마지막 소식은 죽음

 

누군가의 죽음을 파먹으며 하루를 견딘다 마치

지키지 못한 약속은 차라리 잊는 게 좋다

그러니 이제 서로 안녕

 

 

*시집/ 상냥한 인생은 사라지고/ 현대시학사

 

 

 

 

 

 

나는 여러 번 죽고 싶다 - 강회진

 

 

초승달과 밤하늘

그 사이에 내가 서 있다

나뭇잎과 나무 사이에 내가 서 있다

 

양들은 침묵으로 구름을 뜯어내고

죽음의 꽃을 매단 나무들

밤이면 붉은 눈으로 어둠을 견딘다

 

빽빽한 간절함, 혹은 단호함으로

은행나무는 촛불처럼 타오른다

나무에게는 수많은 귀가 있으므로

사소한 물음에도 귀가 아팠다

 

꿈에서조차 그는 나를 지나쳤다

피를 흘리지 않으려고 나는

상처를 붙들어 맸다

 

그러나 모든 결말은 절망이어서

오늘은 그만큼만 죽는다

 

나는 오늘은 한 번 죽었다

이생에서 나는 여러 번 죽고 싶다

단 한 번만 죽는 사람과는 만나고 싶지 않다

 

 

 

 

 

*시인의 말

 

꽃 피운 나무 한 그루
혹은 꽃 피운 한 그루 나무에 대해 생각한다
이 마음 저 먼 꽃에게 가 닿았으면 좋겠다
그러면 뭐하나, 꽃은 지고 마는 것을
그러면 또 어떠한가,
그 자리 다시 꽃 피울 것을
그러면 또 어떠한가,
한때 꽃이 피었다는 것을
나무는 잊지 않을 것을
꽃은 꽃의 마음
나무는 나무의 마음
내 마음은 내 마음
안녕, 우리의 작은 꽃잎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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