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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먹는 밥 - 강시현

혼자 먹는 밥 - 강시현 흰 목덜미 같은 사발에 밥 한 주걱 퍼서 식은 시래깃국 부어 불 꺼진 저녁 찬장 마주하고 병자같이 먹는다 얻은 기억은 가물가물한데 불현듯, 내놓아야 할 것이 줄지어 섰다 다가올 것들은 희미하고 떠나갈 것들은 또렷하고 당당하다 마당에서 토막 잠을 자던 바람이 어깨를 들썩인다 이제 몸 밖도 몸 안도 조금씩 내놓아야 할 때인가 매달릴수록 떠나는 것들이 구름져 비 되어 내린다 아끼는 것들은 붙잡지 않아도 차가운 온도로 떠난다 혼자임을 깨치는 일은 살가운 자기 그림자와 이별하는 아픔이다 무거운 나이도 그렇게 먹는 것이다 무엇을 기다리든 허기진 것들은 혼자 먹는 밥처럼 절망인 척하는 것이다 애매한 질문은 되돌려 주는 것이다 훌륭한 해답을 알고나 있는 듯이 *시집/ 대서 즈음/ 천년의시작 슬..

한줄 詩 2022.06.12

유월 바람 - 한명희

유월 바람 - 한명희 잎에 가려 꽃 같지도 않게 피어 있던 감꽃 내린 비에 떨어져 떠날 것은 떠나고 남을 것만 남았다 처마 끝에 달린 달과 어둔 밤을 함께한 별들도 떠날 것은 떠나고 남을 것만 남아서 현충일도 지난 새벽까지 남아서 이렇게 반짝이고 있듯이 별을 닮은 감꽃도 견뎌서 살아남은 힘으로 이 해가 가기 전에 저만의 별을 키워 달콤하고 투명하게 모나지 않게 단단하게 세상에 내놓을 것이니 내가 너를 너라고 부를 수 없는 곳에서 인파에 가려 채 피다 말다 시든 나는 어느 별을 보고 어떤 감꽃에 매달려 천둥 치는 비바람과 서슬 푸른 밤을 새야 땡감 같은 자식들 단단하되 떫지 않은 단감 되어 울 밖에 내놓을 수 있을까 밤비 물러가듯 떠날 때 떠나서 맑고 투명하게 잊을 때 잊혀서 저 별들처럼 하늘에서 빛날 수..

한줄 詩 2022.06.11

두어 닢 그늘을 깔기까지는 - 홍신선

두어 닢 그늘을 깔기까지는 - 홍신선 마을 길섶 느티나무 밑동에 너덜대는 껍질들 길고양이가 발톱이라도 갈았는가 앞발 들어 할퀴었는가 지나는 어느 태풍에 생살 찢기거나 누군가의 가지치기하는 낫날에라도 찍혔는가 그렇게 더께 진 흉터를 숱하게 제 안에 숨기고 보듬어서야 나무는 암암리에 터득했는지 우람한 한 그루 고목으로 때때로 그늘 두어 닢씩 꺼내 펴 주곤 했다. 이제는 하릴없이 늙어 노골로 선 그 등줄기엔 반들반들 줄곧 세월이 오르내린 길도 나 있다. 사람도 뭇 것들에 두어 닢 그늘이라도 깔아 주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깊게 패인 상처들을 쟁여 안아야 하는가. *시집/ 가을 근방 가재골/ 파란출판 손에 관한 명상 - 홍신선 왠지 이즘 내 손은 움켜쥐거나 붙잡질 못한다. 찻숟가락을 집었는데 그놈은 제멋대로 탁자에..

한줄 詩 2022.0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