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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수걸이 - 서화성

마수걸이 - 서화성 오래전 일이 되어버렸다 첫날 새벽에 나무껍질 같은 아버지 등을 밀어줄 때 시원하게 빨대를 꽂아 요구르트를 마실 때 집에 가다 파전에 막걸리 한잔할 때 첫날 새벽에 나무뿌리 같은 엄마와 고성행 첫 버스를 탈 때 먼지가 앉은 어깨를 딱딱 말없이 털어줄 때 유난히 어둠에 가린 흰머리가 깜박거릴 때 보따리를 이고 저만치 앞서갈 때 주름진 아버지가 싫어 등을 피나도록 밀은 적이 있었다 그래도 아버지는 아픔을 참는지 어깨를 들썩일 뿐 주름을 밀면 주름이 펴지는 줄 아닌 나이가 지나 조금만조금만 더 했지만 더 이상은 아버지와 목욕탕에 갈 수 없었다 아직은 어둠이 사라지기 전까지 시간이 있었다 고양이 세수를 시키고 길을 놓칠까 봐 내 손을 꽉 잡았다 알 수 없었고 보이지 않았지만 눈앞을 가리는 무언..

한줄 詩 2022.06.22

지진처럼 꽃피다 사라진 - 성은주

지진처럼 꽃피다 사라진 - 성은주 우린 서로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버려진 상처의 속도만 기억할 뿐 출발선에서 신발을 챙기고 오래된 지도를 꺼내 보았는데 발자국으로 표시된 자리마다 파도가 출렁인다 외로운 물고기들이 서로 몸 비빌 때 잃어버린 부표가 떠오른다 지구 어딘가 찍힌 발자국으로 아무가 아무에게 아무를 아물게 하는 저녁 모퉁이는 잡히지 않고 낙서 가득한 얼굴들만 가득하다 읽어 내지 못한 감정에 다시, 발밑에서 꽃들이 진다 손잡이 없는 문을 열 때마다 당신의 어딜 만져야 할지 어제부터 회전목마는 멈추지 않고 대화가 필요한 밤에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신발만 가득하다 때론 내가 아닌 다른 누구이고 싶을 때가 있다 종이에 글씨를 눌러쓰면 꾹꾹 누르던 표정이 떠올라 공책을 덮고 공책은 당신을 지우고 또 지우다..

한줄 詩 2022.06.22

추워서 너희를 불렀다 - 하상만

하상만 시인이 새 시집을 냈다. 출판사 걷는사람에서 좋은 시집을 많이 낸다. 여기서 나온 시집은 어느 정도 품질(?)이 보증되기에 한 권도 빼지 않고 들춰본다. 그렇다고 모든 시집을 끝까지 읽는 것은 아니다. 몇 쪽 들추다 만 시집이 더 많다. 코드가 맞는 시인은 한 두 편만 읽어도 금방 알 수 있다. 그래서 나의 시집 구입 방식은 출판사 평만 믿고 덮어 놓고 사는 것이 아니라 직접 서점에 나가 실물을 보고 산다. 이 시집도 그 중의 하나다. 이 책 는 하상만의 세 번째 시집이다. 이전의 시집을 읽었으나 그리 눈여겨 보지 않았는데 이번 시집에서 완전 빨려 들었다. 시가 완전 물이 올랐다고 해야 하나? 이래서 그 시인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적어도 세 권의 시집을 내 이후라고 생각한다. 하상만 시인은 고등..

네줄 冊 2022.0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