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식물 합니다 - 김륭

마루안 2022. 6. 17. 22:58

 

 

식물 합니다 - 김륭

 

 

식물 합시다, 이 말을 자전거에 태우고 달리면

변한다. 아파트에서 요양병원으로 주거지를 옮긴

엄마의 자서전엔 그렇게 나온다.

 

식물은 꼬리 대신 머리를 흔든다.

 

입을 발밑으로 떨어뜨려 하늘이 내려오길

기다리는 자세, 가만히 누워만 있는

당신을 내려다보면 죽음을 초월해 한 번 더 사는

기분.

 

잘 팔리는 시집 제목에 목줄을 묶어 바람 쐬러

간다. 없는 애인이 따라나설 때도 있지만

아주 드문 일이다.

 

잘생긴 이팝나무 하나 골라 밤에게 이야기하듯

볼일을 보다가 문득 나를 데려오지 않았단

생각을 할 때도 있다. 미쳤나 봐, 언제까지 머리를

꼬리처럼 흔들어야 되는 걸까.

 

잘 팔리는 시집 속에는 뿌리를 꼬리로 사용해

춤을 추는 부족들이 산다고 했다.

 

땅만 보고 걷다 보면 가까워지는 나무의 잠, 속에서

끓어오르기 시작한 나를 기다리고 있을

당신과 집에 들어가면 화를 낼 것 같은 밤을 위해

작은 화분 하나를 샀다.

 

이제 울기만 하면 된다.

 

녹슨 자전거처럼,

 

 

*시집/ 나의 머랭 선생님/ 시인의 일요일

 

 

 

 

 

 

gone - 김륭
-박정임 한정판


비에게 들었다
잘못한 일도 별로 없는데 자주 아프다는 말
마음보다 축축해진 말은 종이에도 옮겨 놓을 수가 
없어서

나는 또 혼자서
고장이 나 버린다 비는 자꾸 오는데
비가 모르게 데려올 수 있는 사람이 없을까, 하고
생각하다가

점점
나는 불어나 몸 밖으로 떠내려가 보지만
다리몽둥이 부러뜨려서라도 붙잡을 수 있는
사람 하나 만들지 못하고 살아서

엄마, 미안해
펴지지 않아 찢어질 수도 없는 우산처럼
나는, 나를 떠날 수도 없나 봐

그래서 그래 누워만 있는 당신 앞에 주룩 서 있으면
미안해 비도 나이를 먹나 봐
자꾸

아파

또 혼자서 고장이 나
요양병원에 누워 있는 당신 말처럼 나 또한
잘못한 일이 별로 없는데…… 그래서
그래

엄마, 우리 잠을 버리자
나는 죽지 않는 사람이 되고 당신은 살지 않는
사람이 되어 비가 지나듯 그렇게
자주 아프자

팔짱 낄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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