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4746

빈혈 또는 슬픔증후군 - 김태완

빈혈 또는 슬픔증후군 - 김태완 원인을 찾기 가장 어렵다는 현상 못이 박히는 벽이 되어 보기도 한다 못질에 파이는 상처 하나쯤은 견딜 수 있다 너를 온전히 일으키기 위하여 더러 날카로운 문장을 쏟아내기도 하고 무성한 가시밭을 걸어보기도 했다 애증의 눈물이 가슴까지 젖어가는 순간에도 중심을 잡으려 질끈 눈을 감고 더 크게 눈을 뜨고 사랑한다 사랑한다 보듬어 가며 장성할 그날을 위해 무거운 아침을 들어올렸다 빛나는 나날들이 꿈결같이 지나가고 온전하면 그것으로 됐다고 다짐하면서 잡초를 뽑아내는 농부가 되어 물이 되고 햇살이 되고 때로는 폭풍우가 되어 흔들어 보기도 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린 줄 알았잖아 안과 밖이 부둥켜안고 울어버렸다 그런 말이 어디 있을까 했는데 그런 말이 있었다 *시집/ 다음이 ..

한줄 詩 2022.06.10

살아간다 - 정덕재

살아간다 - 정덕재 -또 201호 남자는 닷새 뒤에 이런 날은 족발이 어울린다며 프랜차이즈 족발집 상표가 또렷한 하얀 비닐봉지를 들어 보였다 1층에서 2층까지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201호는 족발 예찬론자이다 땡볕에도 소나무는 푸르렀고 한 달 넘게 비 구경을 하지 못했다 늦은 밤까지 30도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 온도는 족발을 푹 익히는 날이었다 정육점에서 나오는 부인을 보았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밝은 표정으로 나온 부인은 초혼이고 즐거운 얼굴로 올라가는 남편은 재혼이다 다음 날 가족 한 명은 곱창이 들어 있는 검정 봉지를 높이 들어 이런 날의 아름다움을 칭송할 것이다 201호의 돼지고기는 하루는 족발이고 하루는 곱창으로 살아간다 *시집/ 치약을 마중 나온 칫솔/ 걷는사람 뜀박질 - 정덕재 -601호 다섯..

한줄 詩 2022.06.10

당신이 양심수 - 송경동

당신이 양심수 - 송경동 감옥이 따로 없어 법정최저임금 정도나 받는 강제 노역에 시달린 후 저물 무렵 반지하나 옥탑방으로 자진해 입방하는 당신이 양심수 학자금 대출은 언제 갚나 실업의 번호표 달고 차디찬 면접장 찾아가 또 물먹고 좁은 고시촌 계단을 터벅터벅 올라가 스스로 입감되는 당신이 양심수 평생을 일해도 가질 수 없는 집 한칸 묵은 세간 꾸려 다시 낯선 주소지로 이감 가는 당신이 양심수 요양병원에라도 보내지면 다행 보호관찰도 없는 단칸방에서 누렇게 뜬 채 고독사하는 당신이 양심수 그래서 더 위험한 회유의 대상이어서 가끔은 기초수급자니 최임노동자니 청년수당이니 기본소득이니 알량한 당근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당신이 진짜 양심수 *시집/ 꿈꾸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 창비 청소용역노동자들의 선언 - 송경동 ..

한줄 詩 2022.06.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