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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석복권 - 박은영

즉석복권 - 박은영 가능성은 긁지 않을 때 일어나는 사건 우리는 서로의 등을 긁어 줬다 꽝인지, 행운인지 손 닿지 않는 곳을 긁어 주는 사이가 되었지만 잔소리를 하며 바가지를 긁을 때가 많았다 긁을수록 앞날은 보이지 않고 마른 등판만 눈에 들어왔다 일확천금의 불가능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눈으로 보지 않고 믿는 것이 가장 쉬운 일 긁지 않고 그대로 두는 편이 나을 뻔했다 우리는 꽝이란 것을 안 뒤 즉석요리를 먹듯 뭐든지 쉽게 화를 내고 아무것도 아닌 일로 찢어지자며 인성을 높였다 어떤 날은 긁다가 혈흔을 남기기도 했다 손톱은 피를 먹고 자랐다 우리의 관계에서 남은 건 피밖에 없다는 생각을 할 때, 등골은 물론이고 이마와 미간, 손등,,,,, 온몸은 그야말로 손톱자국으로 이글거렸다 그래도 한 가지 우리가 낳..

한줄 詩 2022.06.16

알래스카 개구리 - 류시화

알래스카 개구리 - 류시화 알래스카의 숲 개구리는 무슨 이유로 그곳에 살게 되었는지 개구리 자신도 알지 못하고 원주민들도 잘 모르지만, 달이 여섯 번 차고 기우는 긴 겨울 동안 몸이 완전히 언 상태로 변한다 끊임없이 내리는 눈 속에서 호흡이 정지하고 심장 박동이 멈추고 혈액 순환도 중지된다 뇌가 활동을 중단해 발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다 그렇게 초록색 얼음 덩어리가 되어 기다리다가 마침내 봄이 오면 몇 분 안에 온몸이 해빙되고 폐와 심장이 정상으로 돌아와 가까운 연못에서 다시 삶을 시작한다 그 빙결의 시간 동안 심장 세포만큼은 살아 있어 날이 따뜻해지면 언제든 부활이 가능하다 얼어 죽는 것이 아니라 얼어서 살기로 결심한 개구리 어느 날 자신도 모르게 외딴 별에 와서 온 존재가 얼어붙어도 온 존재로 심장 ..

한줄 詩 2022.06.16

불량 판결문 - 최정규

나는 직업 뒤에 사師,士,事)자가 들어 있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의사, 변호사, 판사 등 사회적으로 저명 인사에 속하는 사들을 싫어 한다. 예전에 지인의 소개로 변호사를 소개 받은 적이 있다. 내가 법률 도움을 받기 위해서가 아닌 사적으로 알게 된 것이다. 처음 마주쳤을 때 좋은 인상을 받았으나 변호사라는 소개에 호기심이 뚝 떨어진다. 아니 정나미가 떨어졌다는 말이 더 맞겠다. 시험 잘 치는 그 좋은 머리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욹어 먹었을까. 이 생각을 했다. 나는 처세술이라 할 수 있는 인맥 찾기가 늘 이런 식이다. 알아 놓으면 나중 도움 받을 수 있겠구나 그런 거 자체가 없다. 물론 변호사 출신으로 가난한 사람을 위해 도움을 주거나 활동가로 일하는 사람을 존경한다.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것도..

네줄 冊 2022.0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