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4746

뒤뜰 - 편무석

뒤뜰 - 편무석 안타깝게도 떠내려가야 했던 내가 타고 온 것은 눈물이었다 몇 차례의 정착지에서 덜컹거리며 말라 죽는 나를 던졌고 물수제비 뜨며 한 번만 더 이번이 마지막, 마지막이야 아슬히 우는 버릇이 늘 떠나는 이유였다 핏발 선 눈에 울음이 장작처럼 쌓인 종유석이 전봇대로 서서 골고루 빛을 뿌렸지만 정작 가장 어두운 말뚝이었다는 증언들 이따금 소소한 말들로 쉽게 큰 말을 지우는 재주는 참담하고 당혹스러운 가발이었고 말을 벗어 두고 사라졌어도 누구나 오랫동안 쓸 수 있는 신통한 유혹이었다 성(城)은 성(性) 뒤뜰 어떤 날은 슬픔을 쪼그리고 앉아 빈 병을 불면 뒷문 앞으로 여우가 색소폰 닮은 울음을 닦아 보낸다는 소문을 더러워해야 하는 등불은 슬프고 안타까워 콜록거렸고 목에선 그을음만 끓었다 신비에 가깝게..

한줄 詩 2022.06.30

다시 세상을 품다 - 홍신선

다시 세상을 품다 - 홍신선 간밤 토막잠 밀어내 놓고 새벽 내내 이리 뒤척 저리 뒤척 뒹굴다 보면 끝내 분별 하나가 시오 리 밖쯤 가던 발걸음 되돌려 달려온다. 갈 때는 갈 때고 다시 돌아오는 발걸음이 빠르다. (아암 그렇지 그랬었구나) 문득 내 머리맡이 환해진다. 그렇게 나이 들수록 속 깊이 마음을 어르고 달래며 다듬고 추슬러 아니 돌려서 생각을 자주 바꾼다. 그럴 때마다 때 없이 서리 묻은 세월의 언저리가 더 시려 와도 밤새 멀찍이 밀쳐 두었던 이 산골 세상을 나는 다시 품에 안을 수밖엔·····. *시집/ 가을 근방 가재골/ 파란출판/ 2022 내 공명(功名)은 - 홍신선 갓 벼린 닻을 내린 닻별인가 입식 다섯을 세운 금동관인가. 빗발이 석축 돌에 옥쇄하듯 온몸을 깨어 무늬를 짓는다. 저 무늬 하나..

한줄 詩 2022.06.29

누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듣는 저녁 - 문신

누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듣는 저녁 - 문신 누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듣는 저녁이다 공단 지대를 경유해 온 시내버스 천장에서 눈시울빛 전등이 켜지는 저녁이다 손바닥마다 어스름으로 물든 사람들의 고개가 비스듬해지는 저녁이다 다시, 누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듣는 저녁이다 저녁에 듣는 누가 아프다는 이야기는 착하게 살기에는 너무 피로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문득 하나씩의 빈 정류장이 되어 있을 것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시내버스 뒤쪽으로 꾸역꾸역 밀려드는 사람들을 보라 그들을 저녁이라고 부른들 죄가 될 리 없는 저녁이다 누가 아파도 단단히 아플 것만 같은 저녁을 보라 저녁에 아픈 사람이 되기로 작정하기 좋은 저녁이다 시내버스 어딘가에서 훅, 울음이 터진들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을 저녁이다 이 버스가 막다른 곳에서 돌아 ..

한줄 詩 2022.0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