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마수걸이 - 서화성

마루안 2022. 6. 22. 21:37

 

 

마수걸이 - 서화성

 

 

오래전 일이 되어버렸다

 

첫날 새벽에

나무껍질 같은 아버지 등을 밀어줄 때

시원하게 빨대를 꽂아 요구르트를 마실 때

집에 가다 파전에 막걸리 한잔할 때

 

 

첫날 새벽에

나무뿌리 같은 엄마와 고성행 첫 버스를 탈 때

먼지가 앉은 어깨를 딱딱 말없이 털어줄 때

유난히 어둠에 가린 흰머리가 깜박거릴 때

보따리를 이고 저만치 앞서갈 때

 

주름진 아버지가 싫어 등을 피나도록 밀은 적이 있었다

그래도 아버지는 아픔을 참는지 어깨를 들썩일 뿐

주름을 밀면 주름이 펴지는 줄 아닌 나이가 지나

조금만조금만 더 했지만

더 이상은 아버지와 목욕탕에 갈 수 없었다

 

아직은 어둠이 사라지기 전까지 시간이 있었다

고양이 세수를 시키고 길을 놓칠까 봐 내 손을 꽉 잡았다

알 수 없었고 보이지 않았지만

눈앞을 가리는 무언가가 한 번씩 지나갔다

흰머리가 나기 시작한 뒤부터

조금만조금만 더 했지만

더 이상은 앞서가던 엄마를 볼 수 없었다

 

 

*시집/ 사랑이 가끔 나를 애인이라고 부른다/ 푸른사상

 

 

 

 

 

 

방랑자 - 서화성

 

 

사람 사이에 외로움의 간격은 어떻게 될까

사람이 북적한 도시에서

사랑을 찾아 헤매었던 적이 있었던가

가을비가 내린다

외로움을 타는 가을비가 내린다

길은 외갈랫길

옷깃을 여미는 거리,

나는 길을 잃고 길을 찾는다

도시는 바람이 부는 대로 움직인다

어제의 사람은 가고

나는 우두커니 계단에 앉아

지하도에서 새로운 사람이 올라오는 걸 본다

속이 빈 강정처럼

소문이 무성했던 재래시장

고된 하루를 창문에 기대고 졸고 있는 여자

나는 길을 잃고 길을 찾는다

방랑자여

방랑자여

외로운 그림자를 안고 가는 방랑자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