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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식사 - 김점용

외로운 식사 - 김점용 혼자서 주로 밥을 먹는 그는 외로움을 떠벌리는 자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건 두고두고 먹는 일용할 양식 같은 것이라 생각한다 뜨거운 김을 내뿜으며 절규하던 밥솥도 그의 집에선 입을 꾹 다문다 입을 다문 채 벽 속으로 들어가 다정한 벽이 된다 김치냉장고도 말을 극도로 아낄 줄 안다 오래된 수박 속에서 그는 웅크린 채 잠을 잔다 다음날 검은 수박씨 같은 말들이 싱크대 위에 흩어진다 외로움의 둘레가 넓어질수록 별은 차갑게 뜬다 베란다에 가지런히 놓인 수저 태양의 누생이 다녀간 흔적들 역력해도 그는 이미 그렇게 되어 있었다고 생각한다 우연이란 없는 것이라 생각한다 우연이 아니고는 벗어날 수 없는 갑옷 같은 사방의 벽들이 혓바닥을 내밀어 감옥을 핥는다 그가 식사를 하는 시간이다 *시집/ 나 혼..

한줄 詩 2021.03.12

교복 위에 작업복을 입었다 - 허태준

제목부터 울림을 주는 책이다. 는 실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병무청이 지정한 산업체에서 일하며 군복무을 해결한 청년 노동자의 이야기다. 저자의 글솜씨 덕분에 단숨에 읽어 내려가게 하는 힘이 있다. 한국에서 고졸은 다소 애매하다. 열에 일곱 여덟은 대학을 가는 판국에 고졸을 바라보는 시선도 애매하다. 사고 치고 짤린 불량 학생으로 치부한다. 공부는 더럽게 못하면서 으슥한 골목에서 담배 꼬나 물고 힘 없는 애들을 협박해 돈을 갈취하기도 한다. 대부분 이런 시선을 보낸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대학을 못 갔든, 불량 학생으로 놀다 공부를 포기했든 간에 고졸의 앞날은 가시밭길이다.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이 까마득한데 고졸은 더하다. 일할 수 있는 직종도 한정적이다. 모든 기업은 사원을 뽑을 때 4년제 정규대학 졸..

네줄 冊 2021.03.11

고로쇠나무가 인간에게 - 정기복

고로쇠나무가 인간에게 - 정기복 인간의 위장은 온갖 욕망들로 다양하나 나는 방어기제를 갖지 못했다 봄이면 득달같이 달려와 한 해 온전히 농축한 수액을 수령해 간다 나의 안녕이나 숲과의 조우 따위는 관심 밖의 일이다 내 줄기에 흐르는 푸른 피가 그들 몸 어떤 처방에 도움이 되는지 나로서는 알 수 없다 구멍 뚫고 호수 박아 얻고자 하는 육체의 환희를 나는 이해할 수 없다 그들이 내게 하는 가학은 온당치 못하다 나는 마조히스트가 아니다 숲의 정령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것은 만물과 매한가지로 한 생명일 따름이며 우리네 날숨이 그네의 들숨이며 그네의 날숨이 우리네 들숨이다 멈추지 않는 호흡과 호흡이 숲을 이루고 숲이 없다면 그대들도 없다. *시집/ 나리꽃이 내게 이르기를/ 천년의시작 김광석 - 정기복 젖은 듯 보송..

한줄 詩 2021.0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