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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올 무렵 - 허림

봄이 올 무렵 - 허림 겨울에는 일이 없다고 대처로 막일 하러 간 사람들이 돌아올 때가 되면 강은 근육질의 얼음을 푼다 그 무렵이면 동네 사람들은 산으로 들어 고로쇠수액을 받거나 둠벙에 얼음 깨고 얼음사리 하는데 족대에 걸려든 고기의 눈빛 보고 올 농사 점을 치기도 한다 점이란 어쩌다 맞거나 틀릴 수 있는 일이건만 고기의 눈빛에 어린 점괘를 뽑아 어탕을 끓여 시린 속을 푼다 누구도 알지 못하는 시간 궁금해지는 나이가 되면 점괘가 보고 싶은 것 산그늘에 쌓인 눈이 녹아 덧물 져 밀려가고 삼월 하순 폭설이 하루쯤 발목을 잡는다 해도 봄이 오는 길목 창촌 별다방 정 마담은 노란 치마를 입고 아지랑이 커피를 내릴 것이다 *시집/ 엄마 냄새/ 달아실 신발 - 허림 사랑방 문턱은 내 이마에 난 혹을 기억하겠지 바람..

한줄 詩 2021.03.15

쇠유리새 구름을 요리하다 - 심명수 시집

사춘기인 10대 중후반 시절을 온전히 인천에서 보냈다. 6년 정도의 기간이지만 한창 호기심 많던 시절이어선지 고향처럼 느낀다. 그때 살았던 인천의 달동네 골목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당시 살았던 동네 뒤편 야트막한 산에 장애인 학교가 있었다. 아마도 시각장애인을 위한 특수학교였을 것이다. 무엇 때문인지 불량기 있는 동네 아이들조차도 웬만해선 그쪽으로 가지 않았다. 어른들만 급한 일이 있을 때 지름길 용으로 다녔을 뿐이다. 내게도 장애인 형이 하나 있었다.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나고 아버지의 유산인 빚더미와 줄줄이 남은 자식들을 어머니 혼자 감당해야 했다. 설상가상 갑자기 초등학교 다니던 형이 다리를 쓰지 못하게 된 것이다. 심하게 다리를 절게 된 형은 바깥 출입을 하지 않았다. 어머니와 형은 서로..

네줄 冊 2021.03.12

은하의 집, 불시착한 별들의 보호소 - 심명수

은하의 집, 불시착한 별들의 보호소 - 심명수 공명처럼 미확인물체가 감지되면 자꾸 이상한 생각이 나 어린 날 어떤 의도와는 무관하게 지구로 불시착했다는 생각, 생각이 떠돌던 그때는 상상의 비행을 하다 가벼운 농담처럼 지구로 떨어졌다고 생각했지 물론, 은하의 집은 지구의 크레바스 밤하늘은 자책과 원망의 무덤이었어 간혹, 천공은 무료한 자아의 탈출구이기도 했지 은하의 세계는 생각보다 생각이 미치질 못해서 화가 났지만 일생을 걸지 않으면 일생이란 없다는 걸 그땐 몰랐어 반짝이는 그물에 걸린 물고기, 화려한 우울증을 앓다가 목을 맨 인형이 떠올랐고 우울은 베갯잇처럼 실밥 터진 곳이라곤 없었어 죽은 인형은 보라 틀의 별자리가 되었다지 별자리를 잇다 보면 큰부리새, 황새치, 여우, 땅꾼, 돌고래라는 이름을 가진 이..

한줄 詩 2021.0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