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교복 위에 작업복을 입었다 - 허태준

마루안 2021. 3. 11. 19:59

 

 

 

제목부터 울림을 주는 책이다. <교복 위에 작업복을 입었다>는 실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병무청이 지정한 산업체에서 일하며 군복무을 해결한 청년 노동자의 이야기다. 저자의 글솜씨 덕분에 단숨에 읽어 내려가게 하는 힘이 있다.

 

한국에서 고졸은 다소 애매하다. 열에 일곱 여덟은 대학을 가는 판국에 고졸을 바라보는 시선도 애매하다. 사고 치고 짤린 불량 학생으로 치부한다. 공부는 더럽게 못하면서 으슥한 골목에서 담배 꼬나 물고 힘 없는 애들을 협박해 돈을 갈취하기도 한다.

 

대부분 이런 시선을 보낸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대학을 못 갔든, 불량 학생으로 놀다 공부를 포기했든 간에 고졸의 앞날은 가시밭길이다.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이 까마득한데 고졸은 더하다. 일할 수 있는 직종도 한정적이다.

 

모든 기업은 사원을 뽑을 때 4년제 정규대학 졸업자 이상으로 한정한다. 애초에 고졸은 서류조차 접수할 수 없다. 하긴 4년제 대학도 서열이 있어 지방대를 나오면 서류 전형부터 탈락할 확률이 높은 것이 현실이다.

 

이 책의 부제목이 <경계의 시간, 이름 없는 시절의 이야기>다. 실업 고등학교는 3학년 2학기가 되면 대부분 현장 실습생으로 일을 한다. 저자도 또래들이 수능을 치른 날 수험생 할인을 바라보며 씁쓸해 한다. 나이가 같은데도 자기는 해당 사항이 없다. 그렇다고 성인도 회사원도 아니다.

 

저자는 이 경계의 시간을 무사히 지나온다. 그리고 열아홉 9월부터 스물셋 4월까지 3년 7개월 동안 공장에서 <산업기능요원>으로 일한다. 산업기능요원은 병무청이 지정한 산업체에서 2년 10개월 간 근무하면 현역 입대를 하지 않아도 군 복무를 이행할 수 있는 제도다.

 

대기업이나 공기업 등은 제외가 되고 대부분 청년들이 기피하는 중소기업이다. 그래도 돈도 벌고 군대 문제도 해결하려는 청년들이 많다. 이런 회사에 들어간다고 곧바로 산업기능요원으로 편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 일반 사원으로 근무하며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다가 자리가 나와야 산업기능요원이 된다. 이 책의 저자가 이 회사에 근무한 날이 3년 7개월인 것도 그 이유다. 당연 이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외국인 노동자가 다수다.

 

예전에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는 전자제품 광고 문구가 있었다. 전자제품은 10년일지 몰라도 사람은 열아홉 스무 살 무렵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 개천에서 용이 날 일은 애초에 없다. 직업도 가난도 세습이 된다. 

 

글을 쓰고 싶었던 저자는 꾸준히 자신의 적성을 개발한다. 아무리 열악한 환경에 있어도 자신을 존중하는 마음을 놓지 않는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성실함이 바탕에 없으면 쉽지 않다. 세상뿐인가. 알량한 문학판에도 서열과 기득권이 쇠사슬처럼 단단하다. 그럼에도 저자는 당당하다.

 

<더 이상 고졸이라는 사실이 부끄럽지도 않고, 대학 생활에 대한 환상이나 동경도 없었다. 어쩌면 그제야 마음의 진짜 모습을 보게 된 게 아닐까>. 저자는 방송대학교를 다닌다. 요즘은 거의 사라진 주경야독이다. 토요일엔 일본어 학원도 다녔다고 한다.

 

예전에 대통령은 대학을 나온 사람이 적절하다고 말한 여성 정치인이 있었다. 그 말 듣고 흥분하면 컴플렉스 때문이라고도 했다. 천박한 지식인의 전형이다. 고졸도 대통령이 될 수 있는 사회와 대졸자만이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 사회 중 어느 쪽이 더 좋은 세상인가. 교복 위에 작업복을 입고도 부끄럽지 않았던 이 책의 저자가 멋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