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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음이 길고 붉다 - 김유석

울음이 길고 붉다 - 김유석 는개는 적시는 몸이 붉다. 는개는 내려온 허공을 바닥으로 바꾸어 몸에 두르는 울음이 붉다. 밟히면 꿈틀하는 것은 몸이 아닌 울음. 늘였다 줄였다, 주름으로 이룬 것들의 몸은 길다. 제 살보다 무른 데만 뒷걸음질 치듯 짚어가는 그것의 울음도 가지런하게 길다. 일획의 생, 머리에서 꼬리까지 땋는 길이 허공보다 아득하여 는개는 오는 날은 길고 붉은 것들이 공중에서 기어 나와 운다. 지르렁 무지르렁, 묽은 초저녁 뒤안을 자기공명하며 저렇게. *시집/ 붉음이 제 몸을 휜다/ 상상인 울음주머니 - 김유석 애비도 모를 씨 사람 손에 받아와서 사산한 새끼 눈 뒤집고 핥아대는 어미 소. 몸에서 함석 두레박 내리는 소리 같은 게 샌다. 이미 죽은 줄 뱃속에서부터 알았지만 그런 짓밖에는 도무지 ..

한줄 詩 2021.03.11

난전 - 손석호

난전 - 손석호 청량리동 길가의 뙈기밭입니다 도시라서 말끔하게 세수한 쑥 달래 냉이 씀바귀 달동네처럼 소복하게 모여 살아요 급하게 뜯어낸 푸성귀처럼 간신히 몸만 뜯어내 기차를 탔기 때문에 뿌리가 고향에 남아 있다는 생각 때문에 아직 뿌리내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사실은 바닥이 너무 딱딱했어요 빌딩 골 사이로 해 떠오르면 계절에 맞게 제철 푸성귀가 풍성하게 자랍니다 단지 뿌리내리지 못할 뿐 꽃 같은 게 피지 않을 뿐 등 뒤 도로에 차들이 쉼 없이 흐릅니다 강물에 뛰어들던 어린 시절처럼 몸을 던지고 싶을 때가 있지만 바라보기만 해요 조금 아플 것 같아서 어디로도 떠내려갈 수 없을 것 같아서 이곳에서 계속 푸성귀를 기르려면 소나기를 피하듯 단속원을 피할 줄도 밭을 통째로 옮기는 방법이나 가짜 안개로 은폐하는 요령..

한줄 詩 2021.03.11

억척의 기원 - 최현숙

얼마전에 일제와 싸운 독립운동가 중에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 많다는 기사를 읽었다. 특히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더 그랬다. 남성보다 여성이 독립 운동을 더 많이 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전혀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역사에 기록된 여성 독립운동가는 손에 꼽을 정도다. 그만큼 알려지지 않고 묻혀버린 여성들이 많다는 얘기다. 이 책 도 여성들 이야기다. 저자인 최현숙 선생은 구술생애사를 개척한 사람이다. 저자가 걸어온 길에 굴곡이 많아서인지 그가 쓴 책에 나오는 사람들도 파란만장하다. 독립운동가나 기업인, 정치인 같은 유명인의 삶만 조명을 받는 시대에서 이런 책은 참으로 소중하다. 따지고 보면 누구의 인생이든 소중하지 않으랴. 티끌 같고 이슬 같은 인생이라지만 나는 모든 사람의 인생은 우주적이라 생..

네줄 冊 2021.0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