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외로운 식사 - 김점용

마루안 2021. 3. 12. 21:28

 

 

외로운 식사 - 김점용


혼자서 주로 밥을 먹는 그는
외로움을 떠벌리는 자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건 두고두고 먹는 일용할 양식 같은 것이라 생각한다

뜨거운 김을 내뿜으며 절규하던 밥솥도
그의 집에선 입을 꾹 다문다
입을 다문 채 벽 속으로 들어가 다정한 벽이 된다
김치냉장고도 말을 극도로 아낄 줄 안다

오래된 수박 속에서
그는 웅크린 채 잠을 잔다

다음날
검은 수박씨 같은 말들이 싱크대 위에 흩어진다

외로움의 둘레가 넓어질수록
별은 차갑게 뜬다

베란다에 가지런히 놓인 수저
태양의 누생이 다녀간 흔적들 역력해도
그는 이미 그렇게 되어 있었다고 생각한다
우연이란 없는 것이라 생각한다

우연이 아니고는 벗어날 수 없는 갑옷 같은
사방의 벽들이 혓바닥을 내밀어 감옥을 핥는다

그가 식사를 하는 시간이다


*시집/ 나 혼자 남아 먼 사랑을 하였네/ 걷는사람


 

 

 

 

고구마 - 김점용


배가 고파 고구마를 삶는다
냄비에서 김이 피어오르고 고구마가 익는다
다 익었나 싶어 젓가락으로 고구마를 찔러 본다
들어간다
고구마는 울지 않는다
나도 가만히 있는다
고구마를 맛있게 먹으려면 고구마 속 울음이 다 익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흰 뱀 두마리가 머리를 꼿꼿이 쳐들고 내 발을 물었다
어떤 고통은 가장 깊은 곳에서 오히려 고요하다
제 울음을 품은 채 고구마가 익어 간다
찔러둔 내 젓가락을 끝까지 다 빋아 주면서

 

 

 

 

# 김점용 시인은 1965년 경남 통영 출생으로 1997년 <문학과사회>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오늘 밤 잠들 곳이 마땅찮다>, <메롱메롱 은주>, <나 혼자 남아 먼 사랑을 하였네>가 있다. 몇 년째 뇌종양 투병 중에 지난 3월 8일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