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쇠유리새 구름을 요리하다 - 심명수 시집

마루안 2021. 3. 12. 21:45

 

 

 

사춘기인 10대 중후반 시절을 온전히 인천에서 보냈다. 6년 정도의 기간이지만 한창 호기심 많던 시절이어선지 고향처럼 느낀다. 그때 살았던 인천의 달동네 골목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당시 살았던 동네 뒤편 야트막한 산에 장애인 학교가 있었다. 아마도 시각장애인을 위한 특수학교였을 것이다. 무엇 때문인지 불량기 있는 동네 아이들조차도 웬만해선 그쪽으로 가지 않았다. 어른들만 급한 일이 있을 때 지름길 용으로 다녔을 뿐이다. 

 

내게도 장애인 형이 하나 있었다.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나고 아버지의 유산인 빚더미와 줄줄이 남은 자식들을 어머니 혼자 감당해야 했다. 설상가상 갑자기 초등학교 다니던 형이 다리를 쓰지 못하게 된 것이다. 심하게 다리를 절게 된 형은 바깥 출입을 하지 않았다. 어머니와 형은 서로의 가슴에 못을 박았다.

 

10대 후반에 집을 나간 이후 형은 소식을 끊었다. 어머니는 이것이 평생 한으로 남았고 돌아가실 때까지 형에 대한 애틋함과 미안함을 간직하고 살았다. 나는 지금도 길을 가다 장애인을 만나면 그냥 지나가지 못하는 습관이 있다. 어쩔 때는 가던 길을 멈추고 오랫동안 바라보기도 한다. 

 

심명수 시인의 <쇠유리새 구름을 요리하다>는 그의 첫 시집이다.  이 시인이 장애인이어서일까. 형이 생각나 더욱 유심히 시를 읽었다. 이 시집을 읽으며 천재 화가 손상기 화백이 생각났다. 예전부터 나는 곱추 화가 손상기의 그림에 열광했다.

 

심명수 시인은 어릴 때 부모님을 여의고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야 했다. 시집에 실린 시에서 시인의 어린 시절을 짐작할 수 있는 한 구절은 이렇다.

 

 

어린 날

문둥이처럼 가마떼기 덮고 산에서 자던 때나

친척집 식모일 해가며 가져온

누나의 설움의 밥을 먹던 때이거나

인천이 고향이라고 수없이 되씹으며

내 삶 영역 다져 오다가

 

*시 <대원사 가는 길> 일부

 

 

그러나 시집 속의 시들이 전부 어두운 것은 아니다. 시인은 열악한 환경에서 성장해 비교적 늦은 나이에 시 공부를 한다. 그리고 2010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당선으로 등단한다. 시인의 길을 열어준 당시 심사위원들의 혜안이 탁월하다. 인맥, 학맥으로 했다면 이런 시인이 눈에 들어 왔을까.

 

시집에는 무척 공감이 가는 시들로 가득하다. 운명은 사람의 쓸모를 외면하지 않고 이 사람에게 시인의 길을 걷게 했다. 김영남 시인의 추천사에 이런 문장이 있다. <심명수 시는 그리움에 기반한 난사 형태의 상상력이 아닐까 싶다. 매력적인 소재에 퍼붓는 상상의 난사 모습에서 그가 얼마나 깊고 아름다운 갈증에 시달렸는지 알게 된다>. 오래 주목할 만한 시인이다.

 

 

낙타 별자리 - 심명수

옹이, 혹은 의혹은
가려울 때마다 너를 생각하게 한다
 
나는 그곳에 너를 묻었다
 
제 무덤을 등에 지고 가는 낙타처럼
반짝이는 여정
고행의 끝이란 한 생을 지고 갈 밥그릇
 
초암사 약수터
낙타가 샘가에 앉았다
멜랑꼴리한 등허리
환생의 껍데기에
치렁치렁 낙숫물 넘치는 소리
생글생글 이 빠진 소리

등이 시려
손가락으로 우주의 행렬을 짚어 가다 보면
너는 어느 별에서
한 번이라도 나와 마주칠 수 있을까
가려울 때마다 긁적이는
나의 아름다운 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