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은하의 집, 불시착한 별들의 보호소 - 심명수

마루안 2021. 3. 12. 21:37

 

 

은하의 집, 불시착한 별들의 보호소 - 심명수


공명처럼 미확인물체가 감지되면
자꾸 이상한 생각이 나

어린 날 어떤 의도와는 무관하게 지구로 불시착했다는 생각,
생각이 떠돌던 그때는
상상의 비행을 하다 가벼운 농담처럼 지구로 떨어졌다고 생각했지
물론, 은하의 집은 지구의 크레바스
밤하늘은 자책과 원망의 무덤이었어

간혹, 천공은 무료한 자아의 탈출구이기도 했지
은하의 세계는 생각보다
생각이 미치질 못해서 화가 났지만
일생을 걸지 않으면 일생이란 없다는 걸 그땐 몰랐어

반짝이는 그물에 걸린 물고기, 화려한
우울증을 앓다가 목을 맨 인형이 떠올랐고 우울은
베갯잇처럼 실밥 터진 곳이라곤 없었어
죽은 인형은 보라 틀의 별자리가 되었다지
별자리를 잇다 보면

큰부리새, 황새치, 여우, 땅꾼, 돌고래라는 이름을 가진 이들이
떼 지어 살고 있었어
그들은 은하의 집에 살다 먼저 죽은 고아들이었다지
너를 조랑말, 작은 곰, 쌍둥이, 도마뱀, 마차, 떡갈나무라고 바꿔 부르자
너는 한 치 망설임 없이 떡갈나무 숲으로 와락 안겨왔어

우리는 바닥에 주저앉아 상실된 무언가에 대해 논의해야만 했어

머리를 긁적이며 수억 광년으로부터 또다시 방문객들이 찾아올 거라는,
또 다른 누군가 올 거라는 생각은 하지 마
머리가 저릿저릿 아파

은하의 집 마당 깊은 밤은 욕구불만의 놀이터
밤이면 자꾸 이상한 생각이 아파


*시집/ 쇠유리새 구름을 요리하다/ 상상인

 

 

 

 

 


낙타 별자리 - 심명수


옹이, 혹은 의혹은
가려울 때마다 너를 생각하게 한다
 
나는 그곳에 너를 묻었다
 
제 무덤을 등에 지고 가는 낙타처럼
반짝이는 여정
고행의 끝이란 한 생을 지고 갈 밥그릇
 
초암사 약수터
낙타가 샘가에 앉았다
멜랑꼴리한 등허리
환생의 껍데기에
치렁치렁 낙숫물 넘치는 소리
생글생글 이 빠진 소리

등이 시려
손가락으로 우주의 행렬을 짚어 가다 보면
너는 어느 별에서
한 번이라도 나와 마주칠 수 있을까
가려울 때마다 긁적이는
나의 아름다운 병


 


# 심명수 시인은 충남 금산 출생으로 2010년 부산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쇠유리새 구름을 요리하다>가 첫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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