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의 이유 - 백인덕 안경을 닦으며 걷는다 맹목의 순간이 느리게 이어지다 간혹 뚜렷해지는 사물들, 붉게 우는 우체통을 지나면 마주칠 때마다 건빵을 건네주는 선지자가 있다 길에는 늘 구원이 있고 제멋대로 흐르는 죽음도 있고 그러나 길은 어디로도 닿지 않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 가슴 높이 부지런히 양손을 움직여 안경을 닦는다 보지 않아도 좋을 것을 너무 많이 본 안 봐도 되는 것을 열심히 본 마땅히 봤어야 할 것을 안 본 나와 시대와 세계와 우주 아이가 흘린 과자를 쥐고 순식간에 나무 위로 올라가는 다람쥐 제 그림자에 환한 모자 하나 씌워주지 못한 불기(不起)의 게으름이 오돌오돌 발밑에서 솟아오르는 여기-지금 불멸(不滅)이라니, 아무 겨냥도 없는 종소리 살 틈을 파고든다 *시집/ 북극권의 어두운 밤/..